“韓은 우리 외교상대 될 수 없어
李, 방랑시인 같은 말… 망상·개꿈”
金, 대통령 실명 거론하며 맹비난
다음주 한·미 정상회담 겨냥해
韓에 북핵문제 발언 말라 ‘압박’
대통령실 “선제조치 남북 위한 것”
대북 유화 기조는 불변 재차 강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9일 “이재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위인이 아니다”라면서 “한국은 우리 국가의 외교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 등 외교무대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이재명정부의 대북 선제 조치를 계속해서 깎아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북 당국자가 우리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왜곡해 표현하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남북신뢰 회복 조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여정 “李, 방랑시인 같은 말만”
김 부부장은 이날 외무성 주요 국장들과 협의회를 열고 “한국 정부의 기만적인 ‘유화공세’의 본질과 이중적 성격을 신랄히 비판”하며 국가수반(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외정책 구상을 전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대남 정책을 외무성이 대외정책의 일부로 관할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이 실무 차원에서 이행되고 있음을 은연중에 밝힌 것이다.

김 부부장은 이 대통령이 지난 18일 을지국무회의에서 한 ‘작은 실천이 조약돌처럼 쌓이면 상호 간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는 발언을 거론하면서 “방랑시인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고 비꼬았다. 김 부부장은 “마디마디, 조항조항이 망상이고 개꿈”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또 정동영 통일부 장관, 안규백 국방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의 실명을 일일이 거론하며 “‘보수’의 간판을 달든, ‘민주’의 감투를 쓰든 한국의 대결 야망은 추호도 변함이 없이 대물림하여 왔다”고 비난했다.
이재명정부의 대북 선제 조치는 “기만적인 유화 공세”일 뿐 “악취 풍기는 대결 본심”은 바뀌지 않았으며 한국은 “미국의 특등 충견”이므로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南 상대 않겠다며 대남 입장 발표, 왜?
당국자들은 김 부부장이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재명정부를 평가절하하는 입장을 반복해서 발표하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재명정부가 역내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지지를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것을 북한이 내심 경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나라와의 핵 협상 등 자신들의 외교관계에 한국이 관여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김 부부장이 외무성 국장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국가와 그의 선동에 귀를 기울이는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적중한 대응방안”을 지시한 대목을 두고 이러한 해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은 또 “급변하는 지역 및 국제지정학적 상황을 우리의 국익에 유리하게 조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평화 및 남북관계 개선을 소재로 한·미 및 양자 대화, 다자무대, 국제사회에 어필하며 주목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평화 및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며 ‘북한 비핵화’ 원칙을 동시 강조할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시점상으로는 다음 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의제가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뤄지는지 주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밖에도 9월 유엔총회,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한·중 정상회담 등 본격화하는 한국의 외교 행보를 의식한 메시지로도 여겨진다.
◆대통령실 “평화 공존 시대 열 것”
대통령실은 이날 김 부부장이 정부의 ‘신뢰 회복 노력’을 비난한 데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정부는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뒤로하고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반드시 열어나갈 것”이라는 평화메시지를 발신했다. 대통령실은 “이재명정부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들은 일방의 이익이나 누구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라 남과 북 모두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거친 반응에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거듭 인내하면서 손을 내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정부는 서두르지 말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대북평화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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