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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트럼프의 ‘피스메이커’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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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0 22:56:28 수정 : 2025-08-20 22:56:27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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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김정은과 대화 재개 나설 듯
머릿속엔 온통 노벨평화상 생각뿐
與 등 진보 진영은 북·미 대화 반겨
우리 국익에 보탬만 될지 고민해야

미국 백악관에 내걸린 그림 한 점이 이토록 많은 한국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적이 있을까.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인 지난 2일 국내 거의 모든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사진 속 그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양국 협상단이 기념 촬영을 하는 동안 눈길을 끄는 배경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남북전쟁 말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북군 지휘관들과 회의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얼핏 패색이 짙은 남군을 궤멸시킬 작전을 짜는 것 같지만 실은 어떻게 하면 전후 남과 북을 화해시켜 하나의 나라로 통합할 수 있을까 중지를 모으는 중이다. 그림 제목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The Peacemakers)인 이유다.

트럼프가 한국 대표단과 사진을 찍으며 굳이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명백하다. 조만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접촉을 재개함으로써 다시 ‘한반도 피스메이커’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 도중인 2019년 6월 방한했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인공, 한반도의 피스메이커”라는 찬사를 들었다. 판문점에서 김정은과의 ‘깜짝’ 회동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피스메이커 역할에 많은 한국인이 감사하고 지지한다”라는 상찬도 건넸다. 6년이 흘렀어도 트럼프는 이를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부터 중국, 인도, 브라질까지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에 애를 먹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내심 트럼프의 독주에 불안과 불만이 가득할 것이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지난달 한·미 무역 협상 타결 직전까지 국민 사이에 ‘고율의 관세를 얻어맞고 경제가 주저앉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컸다. 미 행정부의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 요구에 반대하는 어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한 미국대사관 앞으로 달려가 “트럼프 깡패 짓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무리 그래도 동맹국 대통령한테 ‘깡패’라니, 지나치지 않은가.

그런데 관세 협상이 그럭저럭 일단락되자 범여권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선 트럼프 주가가 오르는 모양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그에 따른 남북 관계 개선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일단 트럼프 본인이 취임 후 여러 차례 “김정은과 잘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최근 북·미 대화와 관련해 “지금의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데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트럼프의 전향적 대북 정책을 바라는 새 정부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오는 25일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이 거의 매일 북한에 우호적 언사를 쏟아내는 것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북·미 관계는 좋아질 일만 남았고, 이는 남북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강한 자신감의 발로로 풀이된다.

문제는 트럼프의 이런 피스메이커 본능이 과연 우리에게 보탬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장 트럼프가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숫자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대신 대북 제재를 풀고, 한국을 상대로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에 드는 비용의 더 많은 분담 등 거액의 청구서를 들이밀 가능성이 있다. 겉으론 그럴듯한 중재처럼 보일 수 있어도 결국 한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영원히 머리 위에 짊어진 채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얘기 아닌가.

노벨평화상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보도에서 트럼프의 피스메이커 행각과 관련해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해 중재 외교를 하는 것은 노벨평화상 수상을 염두에 둔 행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초강대국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갈등을 일시 봉합하는 형태의 중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장차 대립과 마찰의 씨앗만 뿌리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만간 한반도 피스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설 트럼프의 행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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