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에 숭어 떼 찾게 해주는 돌고래들
이웃의 새끼 함께 돌봐주는 암컷 기린들
인간보다 훨씬 전부터 초연결사회 사는
동물들의 정교한 관계 맺기에 관한 탐구
동물들의 소셜 네트워크/ 리 앨런 듀가킨/ 유윤한 옮김/ 동아엠앤비/ 1만8000원
코스타리카의 흡혈박쥐들은 주로 소와 다른 가축의 피를 먹고 산다. 2∼3일마다 피를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배고픈 흡혈박쥐들은 가끔 친구에게 피를 토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런 요청은 받아들여진다. 과거 자신에게 혈액을 나눠 준 친구들에게 더 많은 혈액을 주는 경향이 있다. 이 관계는 상호성에 기반한다. 이전에 도와준 것을 기억하고 있어 먼저 도움을 준 박쥐일수록 우선하여 피를 나눠 받는다. 반복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은 개체는 점차 배제된다. 흡혈박쥐들의 ‘피로 나누는 우정’이라 불린다.

브라질 돌고래의 먹이 네트워크는 흥미롭다. 가을이면 브라질 남부에서는 숭어들이 떼를 지어 이동한다. 숭어는 돌고래와 어부 모두에게 중요한 먹거리다. 숭어잡이 어부들을 도와주는 돌고래들이 있다. 물이 탁해서 어부들은 숭어 떼를 잘 못 보는데 돌고래는 소리탐지기술, 일명 ‘에코로케이션’을 사용해 숭어를 찾아낸다. 돌고래는 숭어 떼를 발견하면 등을 구부리고 머리나 꼬리로 해수면을 쳐 어부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럼 어부들은 재빨리 그물을 던져 많은 숭어를 잡을 수 있다. 이때 숭어 떼는 그물을 피하려고 서로가 뒤엉켜 혼란스럽게 도망치다가 자신도 모르게 종종 돌고래의 입으로 헤엄쳐 들어가고 만다. 인간과 돌고래가 서로 ‘협업’하는 이례적인 광경이다.
많은 이가 인간만이 ‘관계를 맺는 존재’라고 말한다. 사람들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고, 회사나 학교에서 협업하며, 친구·가족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 행동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이에 고개를 젓는다. 그는 동물들도 정교하게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며 그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흡혈박쥐의 경우 혈액을 나누는 행동으로 ‘사회적 신용’을 축적하고, 필요한 순간에 다시 도움을 받는데, 이는 인간 사회의 상호부조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기린의 보육 네트워크’ 역시 눈길을 끈다. 탄자니아의 성체 수컷 기린은 혼자 있을 때가 많으나, 암컷 기린은 다섯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다닌다. 암컷들은 이 그룹에서 저 그룹으로 자주 이동하고, 특별히 장소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보육 그룹’이라고 불리며 수유 중인 암컷 무리다. 이들은 각각 새끼 한 마리를 키우면서, 약 3개월 동안 매일 같은 장소에 머문다. 보육 그룹에 머무는 동안 어미가 먹이를 찾거나 물을 마시러 1시간가량 자리를 비우면 다른 암컷이 나서서 새끼를 지켜준다. 사자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있을 때는 더욱 삼엄한 경계를 편다. 보육 그룹의 새끼들은 가끔 제 어미가 아닌 다른 암컷들의 젖을 얻어먹는다. 이외에도 침팬지가 먹이를 나누거나 아기 코끼리가 울음을 터뜨릴 때, 그 모든 행동 뒤에는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정교한 ‘관계’가 숨어 있다.
책은 인간의 사회적 연결망 이론(social network theory)을 동물 행동 연구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회적 연결망 이론은 개인이나 집단 간의 관계를 노드(개체)와 링크(관계)로 설명하는 이론을 말한다.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망 속에서 협력, 경쟁, 기억, 신뢰, 감정 등의 요소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동물들도 친구를 사귀고, 적을 구분하고, 심지어 명성 관리와 신뢰 축적 전략을 구사하며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성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복잡한 감정, 기억, 전략적 사고를 통해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어 왔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그는 그러면서 ‘본능적인 생존 기계’가 아니라, 기억하고 연결되고 감정까지 나누는 존재로서의 동물을 보여준다.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생명체로서 동물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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