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과세기준으로 총 43억 상속세
유산취득세 적용 땐 29억으로 줄어
재계 “누진세 부담”… 꾸준히 전환 요구
세율·과표구간 둔 채 상속세 개편 땐
부의 대물림 가속화 등 부작용 심화
유산세 동시에 과표구간도 수정돼야
상속세 취지 맞게 사회적 논의도 필요

“내년에 상속세를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려고 합니다.”
올해 7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2년 세제개편안’ 발표 자리에서 이렇게 밝힌 뒤 정부는 관련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내는 등 상속세 개편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상속인이 물려받는 재산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를 도입해 과세 체계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1950년 상속세법 제정 후 현재까지 유지돼 온 유산세 방식의 체계가 유산취득세로 바뀌면 과세 형평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오지만, 일각에선 ‘부자 감세’라는 우려도 상존한다. 전문가들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에 과세표준 구간 및 세율 조정 요구가 뒤따르는 만큼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응능부담’ 원칙과 과세 체계 합리화, 국제적 동향 등을 고려해 상속세 제도를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응능부담 원칙이란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세금이 부과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재계는 ‘유산취득세 전환’ 꾸준히 요구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니라 상속인 각자가 취득하는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세액이 결정되는 방식인데, 누진세율 적용에 따른 세 부담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현행 상속세는 여러 사람이 공동 상속을 받는 경우에도 피상속인(사망자)이 상속하는 재산 총액을 과표로 해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각자 상속분에 배분된 세액을 납부하는 유산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 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 용역 제안서에서 “상속인 각자가 취득하는 상속재산의 크기에 따라 세액이 결정되는 유산취득세 방식과 달리, 유산세 방식은 상속인별 담세력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상속세는 유산과세, 증여세는 취득과세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어 과세 체계 정합성을 위해 상속세도 취득과세 방식으로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재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사항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달 기재부에 제출한 ‘원활한 기업승계 지원을 위한 상속 세제 개선 의견’에서 “유산취득세형은 상속인의 개별 상속분을 먼저 분할하고, 각자의 상속분에 대한 상속세율을 적용하므로 납세자의 조세부담능력 측면에서 공평한 과세 방식”이라며 유산취득세 도입을 요구했다.
예를 들어 100억원의 유산을 자녀 3명에게 균등하게 상속(일괄공제 5억원 적용)할 경우, 유산세 방식에선 100억원에 대한 상속세 총 42억9000여만원을 각각 약 14억3000만원씩 부담하게 된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 적용 시에는 각자 상속분(33억3000여만원)에 대한 상속세 약 9억7000만원씩을 내게 된다.
◆일각선 “개편 시 부자 감세” 지적도
일각에서는 유산취득세로의 개편 시 상속세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부자 감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상속과 관련해 세금을 깎아주는 취지로 개편한다면 굉장히 문제가 있다”며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커지고 있는데, 사회 계급화를 가속화하고 양극화를 더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유산취득세를 적용한다면, 부동산이나 주식에 대해 양도소득세나 자본이득세를 피상속인에게 내도록 한 뒤 남은 돈을 (상속인들이) 나눠서 유산취득세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현행 과표구간과 세율대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 최상층 부자들의 상속세 부담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앞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재정개혁보고서’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변경과 동시에 세수중립적으로 과표구간 및 공제 제도 등도 함께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율이나 과표구간을 그대로 두고 가면 세 부담이 확 줄어든다”며 “상속세가 갖고 있는 목적이 부의 대물림 등을 완화하는 것이므로 상속세의 원래 취지가 퇴색하지 않도록 세율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율 등도 포함해 사회적 논의 이뤄져야”
상속세율 및 과표구간이 2000년 개편 이후 2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 가치가 상당히 올랐기 때문에 세율·과표 구간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처럼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세율 등에 대한 논의가 동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과표·세율 체계를 고치자고 하면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기재부가 일단 유산취득세 전환과 같이 가장 불합리해 보이는 측면부터 제시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만 딱 고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세제 개편이냐에 대해서는 (유산취득세) 찬성·반대 측 모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세율 등도 포함해) 사회적 논의를 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상속세 과세 체계를 전반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인 만큼 면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상속세 과세가액 산출 방식과 공제제도, 세율 등 유산취득세 전환에 수반되는 쟁점 사항 등을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OECD국 중 상속세 운영 23곳…韓 최고세율 50% 日 이어 2위
상속세를 운영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산세’를 적용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4개국에 불과하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OECD 회원국(38개국) 중 상속세를 운영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미국, 프랑스 등 23개국이다. 이 중 유산세(피상속인의 자산 총액 기준)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개국뿐이다. 이외에 프랑스, 독일 등 19개국은 상속인이 상속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발표한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피상속인의 상속재산 자체에 대해 상속세를 부과하는 유산세 방식보다는 상속인 개개인에 대해 유산의 귀속에 의한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이 상속세의 이중과세 논란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세 부담의 감경을 도모하기 위해 허위 분할신고가 성행할 우려가 있고, 유산분할의 실태에 관한 공시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에는 적정한 세무집행이 곤란한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며 “각국의 사회제도, 세무행정의 수준 등을 고려해 어떠한 유형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OECD 국가 중 2위 수준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직계 상속에 대한 최고세율은 일본과 한국에 이어 프랑스(45%), 영국·미국(40%), 스페인(34%), 아일랜드(33%), 벨기에·독일(30%)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국회입법조사처는 “상속세 최고세율은 실효세율 측면에서 각종 공제제도나 기존 소득세와의 관계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고세율과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달 기재부에 제출한 ‘원활한 기업승계 지원을 위한 상속세제 개선 의견’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승계 시에는 최대주주의 주식 가격에 20%를 가산해 과세하는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 규정에 따라, 최고세율이 60%까지 확대된다”며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가 적용될 경우에는 한국의 최고세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