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사태 9년 그림자 넘어 재회
경제 통한 신뢰·협력 복원 공감
닫혔던 양국관계의 재가동 기대
푸른색 넥타이를 맨 두 정상이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마주 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고,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만나기를 기다려왔다”고 했다. 짧은 인사말 속에서 9년 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틀어진 한·중 관계의 긴 그림자가 엿보였다.
지난 1일 경주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사드 배치 이후 코로나19와 미·중 갈등 등으로 사실상 닫혔던 정상외교 채널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두 정상이 같은 색의 타이를 매고, 서로의 고전을 인용하며 만찬을 함께한 장면은 복원의 의지를 보여주는 외교적 연출이었다. 만찬장에서 두 정상은 각각 상대국의 시문을 인용했다. 이 대통령은 중국 고전의 구절을 인용해 “봉황이 날 수 있는 것은 깃털 하나의 가벼움 때문이 아니고, 천리마가 달릴 수 있는 것은 다리 하나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통일신라 말기 경주 출신 학자인 고운 최치원의 시 ‘범해’(泛海)를 언급하며 “오늘날의 중·한 우호도 계속 생기를 발산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한국의 닭강정과 중국의 마라 소스 요리, 김치만두와 딤섬이 같은 식탁에 오른 것도 그런 상징이었다.
한·중 양국은 통화스와프 재가동, 서비스무역 교류협력, 혁신창업 파트너십, 온라인 사기 범죄 공동대응 등 실질적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같은 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별도의 회담을 열고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을 위해 소통 채널을 활용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는 한·중 관계를 ‘경제에서부터 다시 세우자’는 실용적 접근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중 관계에 대해 “외형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완전히 관계가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실질적 협력 강화가 꼭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분야는 경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는 데도 중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한반도가 안정돼야 동북아도 안정되고, 그것이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북핵 문제 등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당장은 경제 문제 등에서 신뢰와 교류의 회복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 주석 역시 “중국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동반자”라며 상투적이지만 우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재명정부의 대(對)중 외교 노선은 ‘민생과 실용’으로 요약된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은 강화하되 경제 영역에서는 상호이익을 중심으로 중국과 협력의 공간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미·중 간 ‘관세 휴전’이 언제든 전면전으로 격화할 불씨가 남은 상황에서 한국이 택한 것은 실리를 우선하는 현실주의 외교다. 중국 역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추진 등 불편한 이슈가 있었음에도 우호적 태도를 유지했다. 양국 모두 관계를 다시 관리 가능한 선으로 되돌리려는 계산이 깔린 셈이다.
시 주석은 이날 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는 아시아태평양의 가장 중요한 경제 협력 메커니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릴 차기 에이펙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다. 낙후된 어촌에서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선전의 이미지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경제를 통해 신뢰를 복원하고 협력을 통해 관계를 재건하자는 것이다.
물론 과제는 남는다. 미·중 기술전쟁의 여파가 여전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 등 핵심 산업에서 우리가 중국과 펼쳐야 할 경쟁 역시 불가피하다. 여기에 대만해협의 긴장, 북한의 도발, 중국 내부의 성장 둔화 모두 한·중 관계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정상회담이 한 번 열렸다고 시계를 좋았던 과거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국내에서 깊어지는 혐중 정서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갈등을 방치하지 않고 차이를 조율할 통로를 다시 열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은 출발점의 가치를 지닌다. ‘경제’가 외교적 수사를 대신하고 ‘민생’이 정치의 언어를 보완하면서 관계는 서서히 개선되지 않을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첫술을 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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