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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집배원이 등장하는 영화로는 ‘일 포스티노’(1994)가 손에 꼽힌다.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사는 가난한 청년 마리오가 이곳으로 망명 온 칠레의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시와 우정과 사랑,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는 과정을 담은 잔잔한 영화다. 네루다에게 시의 은유, 느리게 사는 삶을 배운 마리오가 절벽의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소리 등 섬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산골이나 섬마을 사람들에게 집배원은 무척 반가운 손님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달려와, 도시로 떠난 자식들의 소식을 전해 주고 잠시나마 따스한 말벗이 돼 준다. 좀 친해지면 어르신들의 공과금 대납, 약 심부름 등 자질구레한 일도 처리해 주는 ‘해결사’다. 그래서 집배원들은 그 가정의 아이가 몇인지, 취향이 뭔지, 어떤 개를 키우는지 정도는 꿰차고 있다. 가죽가방을 어깨에 메고 빨간 자전거를 탄 집배원과 마주치던 어릴 때 기억은 정겨운 풍경으로 남아 있다.

흔히 우체부라고도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집배원이다. 편지와 소포 등 우편물을 모아서(集) 배달하는(配) 사람(員)이라는 뜻이다. 1884년 개화파 홍영식이 고종에게 건의해 우정총국이 설립됐을 때는 체전부, 우체군, 분전원 등으로 불리다 1905년 집배원으로 통일됐다. 우정총국에서 1948년 체신부, 2000년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 등을 거쳐 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 소속 공무원이다.

집배원들은 “죽으면 무릎부터 썩어 없어질 것”이라는 농담을 한다. 많게는 하루 2000통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시골에서는 100㎞ 이상을 오토바이로 달려야 하는 탓이다. 최근 전국우정노동조합이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이들은 “중노동과 과로에 시달리는 집배원을 살려 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난해 집배원 25명이 사망한 데 이어 올 들어 9명이 과로 등 이유로 사망했다. 그런데도 우정사업본부는 우편사업 적자를 이유로 집배원 충원 등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고 외치는 문재인정부가 왜 뒷짐 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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