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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치고 내기 걸고… 호기심 자극
책장 빨리 넘기게 하는 능력 가져
모순과 부조화 통해 드러난 진실
독자에 쓱 내밀어 보여주는 효과

로알드 달 ‘목사의 기쁨’ (‘맛’에 수록, 정영목 옮김, 교유서가)

보기스씨는 작은 체구에 배가 불룩 튀어나왔으며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커다란 갈색 눈은 상냥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목에는 목사들이 다는 목깃을 달고 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는데, 이런 차림이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편안한 인상을 줄 거라고 여겨서이다. 구 년 전, 물을 얻어 마시려고 들른 한 시골집 거실에 있던 떡갈나무 팔걸이의자를 싼 가격에 주고 산 이후부터 보기스씨는 일요일마다 큰 농가나 퇴락한 시골 저택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명함도 대량으로 새겼다. ‘목사, 희귀 가구 보존협회 회장’.

조경란 소설가

그렇다. 실제 직업은 골동품 가구 상인이지만 그는 사기꾼이다. 그 가치를 모르는 시골 사람들을 속여서 싸게, 최선을 다해서 싸게 구입한 고가구들을 런던 가구점에서 가장 비싸게 파는. 성직자 차림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보기스씨가 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오만하게, 부자들 앞에서는 비굴하게, 신앙심 깊은 사람들 앞에서는 수수한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도를 펼치고 보기스씨는 오늘 일요일도 한 시골 마을로 가구를 싣기 편한 커다란 스테이션 왜건을 몰고 왔다. 큰 차를 타고 다니는 성직자는 의심을 받을 듯해 마을 진입로에 세워 두고 좀 어리숙한 태도로 집들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보기스씨 생각에 시골 사람들은 의심이 많은 편이라 훌륭한 가구를 발견했을 때 표정을 들키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 주인과 이웃, 남자들이 세 명 모여서 돼지를 잡고 있는 집에서 보기스씨는 한 손으로 심장을 움켜쥘 뻔한, 18세기 고가구를 발견했다. 고가구계에서 특별한 이름을 얻은 장(欌)으로 그걸 손에 넣기만 하면 유명해지는 데다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목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자신의 오래되어 덧칠한 가구에 관심을 보이고는 이내 별 관심이 없다는 투로 이건 모조품이 틀림없다고 하자 기분이 상한 집주인은 오래된 보증서까지 내보였다. 보증서까지 있는 고가구라니. 시골 사람들을 속이는 데 능숙한 보기스씨는 더욱 심드렁한 태도로 이렇게 소곤거렸다. 자신에게는 장의 다리만 필요하고 다른 부분은 땔감에 불과하다고. 거래를 성사시켜서 조금이라도 적당한 값을 받고 싶었던 집주인과 이웃들은 풀이 죽었다. 의뭉스러운 보기스씨가 기다려왔던 순간이 온 셈이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실제 가치가 2만파운드가 될지 모르는데 그들에게는 그것도 많이 쳐드리는 겁니다, 하는 태도로 20파운드만 주고. 장을 실을 차를 가져오겠다며 보기스씨는 그들을 경멸하며 웃음을 참고 집을 나간다. 이제 십 분 후면 그 귀한 가구를 자신이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자, 이야기꾼 작가 로알드 달은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이야기꾼은 무엇보다 시점의 효과를 잘 아는 것 같다. 작가는 보기스씨를 퇴장시키고 이제 독자에게 집주인이자 가구 주인, 그리고 이웃들 두 명을 남겨두었다. 그들은 사기꾼 보기스씨가 차를 갖고 올 동안 무엇을 할까, 독자는 어떤 장면을 보게 될까,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될까? 독자가 이런 기대를 하게 하고 책장을 빨리 넘겨보게 만드는 힘을 어떤 작가나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알드 달은 이런 사기를 치고 사기를 당하고 내기에 이기고 내기에 지는 사람들, 속고 속이는 짧은 이야기 구조에서는 그야말로 진면목을 보여준다.

반전(反轉)이 그 이야기의 운명처럼 느껴지게 하고 치밀하게 계획해서, 결말에서는 이해가 충분하도록 무너뜨리는 기술이라는 것을 이 단편으로 다시 배운다. 남은 세 사람은 무언가를 도모한다. 보기스씨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채 쾌활한 걸음으로 저기 걸어오고 있다. 결말을 아는 사람은 독자뿐이다. 어느새 씩 웃고 있는. 결말에서 블랙 유머는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닐까. 모순과 부조화를 통해서 드러난 진실을 독자에게 쓱 내밀어 보여주기.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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