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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 사랑하고, 없어도 주눅들지 마라 … 우린 어떤 이웃인가

입력 : 2019-06-24 02:00:00 수정 : 2019-06-23 20: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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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볼 만한 연극 / 겸애 주창한 묵자 얘기 다룬 ‘묵적지수’ / 승자독식 체제의 인간사회 모순 짚어 / 8평 옥탑방 소재 ‘망원동 브라더스’ / 남자 4명 좌충우돌 삶 정겹게 담아내 / ‘포스트 아파트’ “집이란 뭔가” 메시지 / 무대·객석의 경계 없이 얘기 풀어나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략가 묵자(墨子)와 서울 옥탑방의 지질한 인생 이야기, 한국인의 뉴욕 아파트 구입기 등 다양한 무대로 7월 연극가가 채워진다.

남녀 배역 구분을 없앤 파격을 택한 연극 ‘묵적지수’ 배우들이 연습 중이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묵자 대 초혜왕, 묵적지수

국경을 따지지 않고 널리 인간을 사랑하고 차별하지 않는 ‘겸애(兼愛)’를 주창한 묵자(본명 묵적·墨翟)를 무대로 소환한 건 31세 젊은 극작가 서민준이다. 제8회 벽산희곡상을 탄 ‘묵적지수’가 이래은 연출로 26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묵자는 약육강식의 절정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반전주의자로서 평화만 외치는 게 아니라 천재적 지략과 기술로 철저한 수비전을 펼쳐 전쟁의 참화로부터 인민을 보호하려 애쓴 사상가로 유명하다. 안성기·유덕화 주연의 영화 ‘묵공’으로도 유명한 묵자의 이야기를 묵적지수에선 묵자와 초나라 혜왕의 가상전에 초점을 맞췄다. 패도로 침략전에 나선 혜왕을 막기 위해 약소국편에 선 묵자는 실제 전쟁과 같되 한 사람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가상의 승부를 제안한다.

권력을 얻기 위해 인명을 소모품 취급하는 군주에 맞서 묵자는 ‘사람을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를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를 통해 극은 승자독식 체제로 편성된 인간 사회의 모순을 짚어보며 사회적 약자도 주체적으로 변화와 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는 묵가의 사상을 조명한다.

특히 묵적지수는 전쟁 서사가 남성 전유물이라는 관념을 깨기 위해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파격을 택했다. 무대 또한 보통 공연과는 다르게 360도 모든 각도에서 다양한 시선을 둘 수 있는 원형 무대를 사용한다.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는 8평 옥탑방에 모인 네 남성의 좌충우돌을 담았다. 씨어터오컴퍼니 제공

◆옥탑방의 루저들, 망원동 브라더스

‘망원동 브라더스’는 우연히 8평 옥탑방에서 모인 20대 만년 공시생, 30대 백수, 40대 기러기아빠, 50대 황혼 이혼남의 좌충우돌을 정겹게 담아낸 연극이다.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김호연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탄탄한 줄거리가 서민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올해 방방곡곡 우수공연작이기도 하다.

극은 백수나 마찬가지인 만화가 옥탑방에 하나둘 식객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과거 만화출판사에서 일했던 기러기아빠 김부장, 만화가 연습생 시절 사부, 대학후배 공시생 등이 모여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다양한 사건을 만든다.

이처럼 ‘옥탑방’이란 상징적 공간에서도 네 남자는 연대를 통해 재기를 꿈꾼다. ‘체홉, 여자를 읽다’, ‘부족한 그대로 동지’, ‘넌센스 잼보리’ 등을 통해 관객과 공감하는 연극을 만들어 온 홍현우 연출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없는 삶’은 ‘죄’가 되어 버렸다. 한데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든다. 왜 주눅 들어 살아야 하는가. 없이 살아도 그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후져 보여도 나름의 멋이 있다”고 연출의 변을 적었다. 7월 19일부터 8월 25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우리에게 아파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연극 ‘포스트 아파트’. 두산아트센터 제공

◆나에게 아파트란 무엇인가. 포스트 아파트

‘포스트 아파트’는 아파트를 주제로 한 올해 두산인문극장의 마지막 작품이다.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이웃인가” 등의 질문을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온 아파트 곳곳의 소리와 풍경들과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1년여 동안 아파트에 대한 자료조사, 인터뷰 및 현장답사를 거쳐 만들어진 작품이다.

193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부터 변소가 처음으로 집안으로 들어온 1958년 성북구 종암아파트,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본뜬 1962년 단지형 마포아파트, 기업 브랜드를 외벽에 처음으로 나타낸 1975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우리나라 아파트 약사와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여섯명의 배우가 몸짓과 소리로 표현한다.

극 형식은 실험적이다. 건축가 정이삭이 창조한 공간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다.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는 신(神)이 아니라 오브제의 하나로 참여한다. 공연 몇몇 장면은 극장이 아닌 외부공간에서 촬영된 영상을 틀어주는 식으로 전개한다. 배우들이 관객과 뒤섞여 자신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파트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일관된 스토리텔링 없이 풀어놓는 탓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평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배우를 다른 배우들이 붙잡아주는 장면에서야, 어렴풋이 재개발로 떠밀려 난 사람을 품는 연대를 감지하게 된다.

정영두 연출은 “‘포스트 아파트’는 집과 이웃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공간, 영상, 조명, 퍼포먼스로 풀어본 작품”이라며 “아파트가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 없이 각자의 답을 찾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7월 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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