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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기업문화 선택 아닌 필수… 변화 수용해야”[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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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4 20:15:22 수정 : 2018-12-14 2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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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문화 만연해 있는 한국 직장/공채·연봉제 등 수직 구조 강화/젠더 민주주의, 직장 민주화 핵심/임금격차·유리천장 등 해소해야/강한 위계 현대 기업에 맞지 않아/혁신하는 조직만이 살아남을 것

‘꼰대, 진상, 갑질….’ 직장 상사 앞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수식어들이다. 한국 직장 문화가 그만큼 고달픔을 반증한다. 우리 조직문화는 군대를 닮았다. 상명하복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고, 윗사람이 부당해도 토 달지 않는 게 살아남는 길이다. 촘촘한 위계질서 속에 수많은 이가 고통을 삼키며 속으로 곪고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한국 직장의 상명하복 문화·갑질 문화가 없어지려면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팀장연수원을 도입하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문 기자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런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 지수는 훌쩍 높아졌는데 어째서 직장 문화만 구시대적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신간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를 내놓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우석훈은 “아직 군대문화를 바꾸자고 얘기하기엔 많이 이르다”며 “한 4, 5년쯤 있다가 책을 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남자는 (군대식 조직에) 불편함이 전혀 없어요. 대학생들도 익숙해지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죠. 또 신엘리트인 민주당 계열의 많은 사람도 불편해하지 않아요. 이들이 (대학 시절) 군인들과 싸우다 보니…. 운동권 내 위계가 확실했죠.”

한국 직장의 경직된 군대 문화는 일제강점기에 이식되고 군사정권과 함께 자랐다. 공채 문화는 선후배 기수라는 또 다른 수직 문화를 만들었다. 이에 더해 차등화된 연봉제는 팀장의 권력을 강화시키며 수직 구조를 강화했다. 우석훈은 “회사에서 토요일에 등산 가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우리밖에 없고 일본도 이 수준은 아니다”라며 “한국이 기념비적으로 이상한 회사 문화”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4, 5년 후에는 다르리라 본다. 그는 “변화는 밑에서부터 온다”며 “지금 대학생들은 학번이 없어지고 서로 ‘∼씨’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회사에 들어갈 때쯤 사회가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장 이상 직원은 이상적인 회사로 ‘가족 같은 회사’를 원해요. 반면 대리 이하가 바라는 건 ‘사생활 보장’이에요. 지금 20·30대 초반 직원들은 (회사 사람들과) 밥 먹기도, 영화 보기도 ‘단톡방’도 싫어해요. 그런데 50대 이상은 이런 변화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40대들은 자기네 회사가 망해가는 중이라 생각하죠. 젊은 사원들이 자세가 안 돼서요. 요즘 회식을 유지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아요.”

그가 생각하는 직장 민주주의는 ‘여직원들이 억지로 웃지 않는 것, 군대식 모델의 상명하복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해법은 과격하지 않았다. 그는 ‘팀장·젠더·오너 민주주의’ 세 범주에서 제도 변화를 제안했다. 팀장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 도입과 국가 차원의 ‘팀장 연수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에 가족친화 인증을 의무화했듯 얼마나 수평적 조직인지 인증받도록 하자는 말이다.

“요즘 신입직원들이 많이 그만두는데, 사장과 싸우거나 3세 승계에 반대해 그만두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바로 위에서 괴롭히니까 그렇죠. 팀장에게 관리 책무가 있다는 걸 우리 사회가 한번도 논의한 적이 없어요. 교육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 하지만, 알려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사고 발생 확률에서 차이가 나죠.”

젠더 민주주의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조직이 되면 다른 사회적 약자의 환경도 함께 개선되기에 제안했다. 우석훈은 육아로 여성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여성 임원의 숫자가 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지켜지면 직장 민주화도 자리 잡으리라 봤다.

“남녀 임금 격차가 너무 커요. 사회 전체적으로 힘들고 춥고 돈 적게 주는 일은 여성들, 약자들이 해요. 편하고 좋은 일자리는 주로 남자들이 가지니, 상위로 갈수록 다 남자들이 올라가죠. 수치로 따져보면 별 거 안 하고 돈 많이 가져가는 건 남자들 아니에요? 나중에는 여성들이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받아간다고 얘기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10, 20년 내에는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오너 민주주의를 위해 유명무실해진 사외이사제와 감사제를 강력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석훈은 “IMF 같은 대형 위기 재발을 막자는 취지로 1999년 사외이사제가 도입됐는데 20년 지나보니 사외이사가 오히려 공식 로비 창구가 됐다”며 “감사 역시 브레이크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오너 일가의 횡포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만 정비해도 지금보다 개선 여지가 많아요. 아마 이게 다음 대선의 주제가 될 거예요. 97년 체제를 20여년 운영해보니 그때 몰랐던 부작용들이 생긴 거죠. 회사가 어떤 틀을 가질 거냐는 상법과 전체 운영 기조를 바꾸는 거라서 결코 작은 얘기가 아닙니다.”

우석훈은 수평적 기업 문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라고 강조했다. “국민소득 7만, 8만 달러 국가 중 한국 같은 회사는 없다”며 “옛날같이 큰 공장을 돌리는 데는 군대식 문화가 잘 맞았지만 지금은 공장조차 스마트 팩토리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군대식 조직으로는) 혁신경제로 갈 수가 없어요. 위계를 따라가다 망하거나,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여 혁신 속도를 높이거나. 선택지가 둘밖에 없는 거예요. 기분에 따라 선택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직장 민주주의가 곧 천국의 도래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회사를 덜 지옥처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회사란 곳은 (늘) 괴로워요. 조직이 변해도 (직장에) 안 오고 싶고, (일을) 안 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일 테죠. 하지만 지금은 힘들게 들어갔는데 너무 괴로워서 그만두잖아요. 굳이 지금처럼 고통받으며 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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