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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오늘도 꼼수 초과근무… 수당 훔치는 공무원들

입력 : 2018-03-25 18:59:51 수정 : 2018-03-26 15: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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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것처럼 보이게… 저녁식사 후 없는 일 만들어 사무실行 / 일과시간에도 할 수 있는 일… 은근슬쩍 미뤄 수당 챙기기 / ‘부정 수급’ 관행에 혈세 줄줄 / ‘삶의 질’ 정부 기조와는 달리 현장선 ‘초과근무 풍년’ 현상
#1.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사무관 A(여)씨. 지난해 주중 그의 퇴근시간은 금요일만 빼고 거의 밤 9시가 넘었다. 11시까지 남아 ‘기타 업무’를 했다. 토요일에 출근한 날도 많다. 매달 4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했으니 하루 8시간 일한 다른 공무원들보다 매달 1주일가량 더 근무한 셈이다. 공무원 노동 강도가 이렇게 높을까. 실상 그의 하루를 뜯어보면 바쁜 일상과 꽤 거리가 멀다. 소속 부서 자체가 바쁜 업무와 거리가 멀다. 일과 시간에 소설이나 잡지를 읽고 웹 서핑을 자주 한다. 일과 후에는 청사 내 헬스클럽으로 운동하러 가는 일이 많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초과근무 중이다. 기록상으로는.

#2. 공무원 B씨는 한술 더 떴다. 회식 후 불콰한 얼굴로 사무실을 찾는 일이 적지 않다. 초과근무 기록을 종료하기 위해서다. 처음엔 멋쩍어하는 기색이라도 내비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듯 행동했다. 보다 못한 다른 직원이 에둘러 지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같이 어려운 처지에 왜 그러냐”며 되레 언성을 높였다. 직원들의 초과근무를 결재하는 부서장도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있다.

두 사례는 모두 ‘관가 1번지’ 세종시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다. 공무원 C씨가 “공무원들이 경각심을 갖게 해달라”며 부끄러운 공직사회 실상을 세계일보에 전해왔다. 그는 자기네 부처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C씨는 “양심 불량이 오히려 고생한다는 평을 듣고 양심대로 하면 일하지 않는 공무원이라는 말을 듣는 현실이 부끄럽다”며 “양심 불량 탓에 국민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근무시간 단축과 삶의 질 향상이 강조되고 있으나 현장에선 거꾸로 ‘초과근무 풍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초과근무 시간을 줄여 확보한 예산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자는 정부 기조에도 어긋난다.
◆“2차는 사무실로…” 초과근무의 유혹

25일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해 보면 초과근무 부정수급은 일부 공무원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각 부처나 부서 특유의 조직문화 또는 기관장, 부서장 의지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부 젊은 공무원들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을 잘못 이해하는 것도 문제다. 일찍 퇴근해 쉬는 게 아니라, 최대한 모은 돈을 펑펑 쓰는 것을 워라밸로 받아들이는 젊은 공무원이 의외로 많다.

농림부 소속 공무원 D씨는 “‘회식 다음은 초과’란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온다”며 “초과근무(기록 부정 작성)를 대하는 태도는 (돈과 휴식에 대한) 개인 선호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최병대 한양대 교수(행정학)는 “초과근무 부정수급은 오래전부터 문제 된 공무원 사회의 관성”이라며 “문화적 삶은 기본적으로 금전적인 부분이 뒷받침돼야 성립하는데 보수가 적은 하급직 공무원의 경우 가능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시에는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생활을 하는 공무원이 많다. 사무실 근처 오피스텔에 홀로 살다 보니 일이 없더라도 초과근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세종청사의 한 경찰 공무원은 “가족을 만나러 가는 주말만 여가라고 생각한다”며 “집에 혼자 있기보다 식당, 헬스클럽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청사에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초과근무 실적이 평가에 반영된다는 잘못된 인식도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부추긴다. 서울시 공무원 E(29)씨는 “지난해 팀장이 ‘최대한 바쁜 것처럼 보이게 초과근무를 많이 하라’고 독려하더라”며 “없는 일을 만들거나 팀별로 다같이 퇴근 시간에 나가서 식사와 수다를 떨다가 청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무원 F(37)씨도 “초과근무를 많이 하는 부서는 ‘조직진단’ 때 정원이 늘어나기도 한다”며 “억지로 초과근무 수당을 찍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일과시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미뤄서 초과근무 수당을 챙기려는 관행도 여전하다.

◆부처·부서별 분위기는 천차만별

물론 ‘꼼수 초과근무’가 공무원 사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처음으로 종합한 ‘부처별 초과근무 평균시간 현황’을 살펴보면 부처 간에 차이가 크다. 하위 5개 부처는 평균 9.2시간 초과근무를 한 반면에 상위 5개 부처는 5배 많은 51.6시간의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부정수급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으나 ‘초과근무 부정수급을 처음 듣는다’고 하는 공무원도 많았다. 부처별, 부서별로 초과근무 부정수급 실태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과천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G(29)씨는 “현 시스템에서도 (부정수급을) 하려면 가능할 것 같지만 가짜로 초과근무를 찍는 일을 주변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지방직 공무원 H(37)씨도 “개인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초과근무를 일절 찍지 않고 있다”며 “그런 관행이 남아있는 부처는 부당수령을 합리화하는 분위기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평균 초과근무 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부처에서 반응이 이와 비슷했다. 이들 부처는 공통적으로 ‘일은 퇴근 전 마무리한다’는 기조를 강조한다. 초과근무가 많을수록 오히려 부서장이 고과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있다.

월평균 초과근무가 7.2시간으로 집계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4∼5년 전 정시퇴근을 강조하는 제도가 처음 도입되자 반발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가 만족하는 분위기”라며 “감시 인력이 야간에 부서를 돌며 야근자가 과도하게 남아있는지를 확인하고 국장이나 부서장 평가에서 감점을 주는 식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평균 11.7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기상청 관계자도 “매달 부서별 근무시간 통계치가 나오면 유독 초과근무가 많은 부서는 개별 면담을 시행한다”며 “처음엔 ‘이래서 일하겠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었으나 상급자부터 솔선수범하면서 지금은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양심불량형 초과근무가 많고 적음은 부서장 의지 등 조직 내부 결단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부처의 경우 초과근무 부정수급을 생각해 볼 수조차 없다.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이 31.7시간인 기획재정부 공무원 I(35)씨는 “바쁠 때는 한 달 100시간 넘게도 일하지만 57시간이 마지노선이라 때로 손해 본다는 생각도 든다”며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초과근무를 하고 싶지 않다”며 푸념했다.

배귀희 숭실대 교수(행정학)는 “중앙에서 일괄 규제를 하기보다 각 부처 공무원이 정말 일하는 만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유연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며 “간극이 계속 벌어지면 공무원 사이에서도 박탈감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상식에 근거한 근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교한 감시망 정비·적발 늘려야”

전문가들은 초과근무를 줄여 생긴 여력으로 신규 채용을 늘리는 일부 기관의 모범적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부처별 초과근무 실태를 제대로 점검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같은 공무원이더라도 다른 조직의 근로여건이나 관행이 어떤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대대적인 실태조사와 내부감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인사와 복무지침 등을 주관하는 인사처도 관련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로 알려졌다. 인사처 한 관계자는 “아직도 그런 곳이 있느냐”며 되물으며 “초과근무와 관련한 내용이 담긴 근무혁신지침과 성과평가지침 등을 만들어 각 부처에 보내고 있지만 가이드라인 성격이어서 강제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한 노무사는 “최근 공무원들이 사회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하다 보니 초과근무가 늘어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그래도 부정한 초과근무를 제대로 감시하고 적발을 늘렸을 때 비로소 공무원들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행정학)도 “공무원 사회 특유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상 부처 장관이나 상급 부서가 관심을 갖고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창수·남정훈·안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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