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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1인 가구 시대… 택배 대리수령 ‘딜레마’

입력 : 2017-05-31 19:22:30 수정 : 2017-06-02 13: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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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쇼핑 늘며 경비원 고충/“평소도 많지만 명절 땐 산더미/ 파손·분실 책임전가 지나친 처사”/ 입주자 “경비실 주민 위해 존재”

 

평소 희귀 운동화를 수집하는 데 취미가 있는 회사원 이모(32)씨는 최근 속앓이를 했다. 이씨는 큰 맘 먹고 300달러 넘는 돈을 들여 해외 직구로 운동화를 구입했다. 배송날짜만 기다리던 이씨는 열흘 정도 지난 뒤 택배 기사로부터 도착 소식을 들었다. 당시 근무중이었던 이씨는 평소 하던 대로 “경비실에 맡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퇴근 후 설레는 마음으로 경비실에 들렀지만, 이씨의 운동화는 없었다. 경비원이 경비실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고 순찰 나간 사이 누군가 이씨의 운동화를 훔쳐간 것. CCTV도 없어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경비원이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뻘의 어르신이라 제대로 항의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경비실의 택배 관리는 의무사항이 아니기에 법적으로 변상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국토연구원의 2016년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7.2%에 이른다. 2인 가구도 26.1%에 달한다. 택배 배달이 주로 이뤄지는 낮 시간에 빈 집이 많다는 얘기다. 흔히 인터넷 쇼핑 배송 메시지 자동 완성 메뉴 중에 “부재 시 경비실에 맡겨주세요”가 가장 위에 위치한다. 이는 택배를 직접 수령하는 경우가 많지 않음을 전제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울러 경비실은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는 믿음도 깔려있다.

인터넷 쇼핑이 대중화되고 택배를 경비실에 맡기는 상황이 일상화된 현실을 반영해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4월 우편법 시행령 개정안에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의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수취인의 신청이나 동의를 받아 경비실이나 관리사무소에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도록 하는 ‘우편물 배달의 특례’ 조항을 신설코자 했다.

그러나 주택관리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대리수령의 법제화는 무산됐다. 경비원의 본 업무에 택배 등의 우편물 수령이 포함되지 않는데다 대리수령 과정에서 제품 파손 및 분실 등이 생길 경우 모든 책임을 경비원이 지는 것은 과도한 책임전가란 이유에서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국토교통부에 개정안 삭제 민원을 제기했고, 국토부도 이를 받아 들여 우정사업본부에 반대의견을 냈다. 결국 우정사업본부는 국토부와 주택관리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당 내용을 삭제한 수정된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법제화는 무산됐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대다수 주민들은 경비원의 존재 이유가 주민 편의를 위한 것이니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인터넷으로 화장품이나 의류 구매를 즐겨한다는 박모(30·여)씨도 “많을 땐 1주일에 두세 번도 택배가 집에 온다. 과거 경비실이 없는 원룸에 살 때는 현관 앞에 두고 가는 일이 많아 잃어버릴까 불안했는데,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에는 경비실에 맡길 수 있어 안심이 된다”면서 “경비원의 대리 수령 혹은 택배 보관소 등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행 법규상으로는 우편물에 기재된 주소지에만 배달하도록 되어 있어 일부 아파트는 출입 자체가 되지 않는 곳도 있어 우편물 대리수령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경비업계는 경비업법에는 경비원이 건물 안전관리 업무 외에는 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택배 수령 등의 보조업무를 법제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다.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김모(66)씨는 “평소에도 택배가 많이 오지만, 명절 때는 택배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주민 편의를 위해 이를 맡아두긴 하는데, 이를 의무화하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우리가 져야 하기 때문에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대부분 고령에다 급여도 많지 않기 때문에 택배 업무까지 주어지는 것은 지나친 부담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현재 경비원을 따로 두지 않는 아파트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무인 택배함 등을 운영하는 아파트도 있다. " 면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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