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는 자신을 위기에서 살려준 집주인을 무참히 살해한다. 자신은 난세의 영웅이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저지른 사건에 불과하다는 조조의 주장은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소리다. 권력을 위해서는 전투병이 필요하고, 전투병을 호령하기 위해서는 군량미가 필요하다. 군량미의 확보를 위해서는 서민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서민들에게는 그만큼의 물질적 정신적 보답이 있어야만 한다. 이게 정치다. 나는 정치를 책에서 배웠다. 처음에는 선악의 논리로 조조를 바라보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조조의 모습이 요즘 자주 등장하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디 삼국지뿐이랴. 돈키호테는 어떻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또 어떤가.
이봉호 문화평론가 |
며칠 후면 2016년이 무대에서 사라진다. 우리가 광화문광장에서, 신문지상에서, TV에서 보았던 모습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권력과 정의 사이를 오가는 일종의 환영(幻影)이 아니었을까. 그 환영의 벽을 뚫고서 다시 제자리에 오롯이 서는 날, 우리 곁에는 믿음직한 한 권의 책이 자리를 함께 할 것이다. 그때는 권력자의 정체를 미처 몰랐다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겨울 칼바람이 불어온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보겠다는 각오로 한 해가 가기 전에 양서를 읽는 시간을 가져보자. 국정농단은 그렇다치고, 책정농단의 시대는 상상하기도 싫다. 우리에겐 아직 독서라는 희망이 남아 있다.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로잡듯이, 출판시장도 불황의 늪에서 멋지게 탈출하는 정유년(丁酉年)이 됐으면 한다.
이봉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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