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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도는 복지예산 100조 시대] (上) 세상 등지는 이웃들

관련이슈 헛도는 복지예산 100조 시대

입력 : 2014-03-06 21:06:18 수정 : 2014-03-09 10: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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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우리나라 사회안전망 곳곳의 허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아버지가 방광암에 걸리면서 가세가 기울었다는 것은 건강보험 보장성의 한계를, 사망한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해온 어머니가 일을 하다 다쳤는데도 실업급여를 비롯한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것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가 부정수급자 선별에 초점을 맞추느라 까다로워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기준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이 언제 또 다른 비극을 부를지 모를 암초로 지목된다. 

◆빈곤의 연대를 강요하는 나라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부양의무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혀왔다. 수급신청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일정수준의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가족의 부양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탈락시키는 제도로, 시민단체들은 줄곧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이 제도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연락이 두절됐는데도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의 경우도 어머니는 근로능력이 인정되는 두 딸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되기가 어려웠고, 지병이 있는 첫째 딸 역시 근로능력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의료급여 혜택을 못받을 가능성이 컸다. 서로가 서로의 족쇄가 된 것이다.

복지부는 “단정할 수 는 없지만 두 딸중 한명이라도 자활근로에 참여하면 수급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순천향대 허선 교수(사회복지학)는 “소득이 전혀 없는 노부모가 2억짜리 집 한 채만 있으면 자식들이 가난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더라도 모두 탈락시키는 것이 부양의무제”라고 지적했다.

2009년 157만 명에 이르던 기초생활수급자는 지난해 135만 명까지 감소한 반면 수급중지자, 즉 수급을 받다가 탈락한 사람은 2010년 17만3000명에서 2012년 21만4000명으로 늘다가 2013년 다시 17만명 선을 회복했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실현을 위해 부정수급자를 걸러냈다며 홍보했지만, 그 안에는 선의의 피해자 역시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허 교수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정부가 말하는 의도적인 부정수급자는 얼마 안된다”면서 “가족에게 도움을 못 받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시스템으로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찾아내 수급자였던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은 ‘행정 실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이 도입되면서 수급자의 소득은 물론 부양의무자들의 파악이 쉬워졌고, 이로 인해 약 30%가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에 수급이 중지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 못해 쫓겨난 사람에게 ‘근로능력자’ 판정

‘근로능력자의 추정소득’도 기초생활보장수급 신청의 문턱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만 18∼64세에 근로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최대 60만 원의 추정소득이 부과된다. 여기에 부양의무자의 소득까지 더해지면 최저생계비를 넘을 가능성이 높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 쉽지 않다. 추정소득을 적용받지 않으려면 의사에게서 진단서를 받아 국민연금공단에서 실시하는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평가를 거쳐 근로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기초생활보호수급자로 지정해 생계를 지원하는 것만큼 근로능력이 있다면 자활 의지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다.

그러나 장애나 심각한 질병이 아니고는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기 쉽지 않다. 일을 할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수급신청을 하러 왔는데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아 막상 자활근로를 신청하면 일자리 없다고 난색을 표하거나, 막상 일하러 갔는데 본인이 하기에 너무 버겁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 1개월 정도 경험하는 직업탐색프로그램 시간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라고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미·오영탁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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