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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시인 이옥봉의 비운의 삶

은미희 장편소설 ‘나비야 나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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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24 18:30:03      수정 : 2009-04-24 18:30:03
소설가 은미희(49·사진)씨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이옥봉의 사랑과 예술혼을 담은 장편소설 ‘나비야 나비야’(문학의 문학)를 펴냈다. 명문가의 서녀로 태어나 시문에 능했으나 사랑 때문에 시쓰기를 포기했다가 비운에 스러진 여인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비극성에 걸맞은 유장하고 서정적인 문체와 감성이 돋보이는 장편이다.

옥봉은 결혼했다가 채 일년도 안 돼 남편이 급사하자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네는 다시 소실자리로 시집을 가라는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시만 쓰면서 시로 세상과 소통하며 시간을 희롱하겠노라고 작심한다. 결국 부친도 딸의 청을 받아들여 그네를 한양으로 보낸다.

“절대로 뒤돌아서서 지나온 자리를 물기어린 시선으로 더듬지는 않을 것이다. 뼈가 에이는 외로움이 저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도 좋았다. 한겨울 이부자리가 얼음장에 누운 것처럼 추워도 좋았다. 그 모든 것들을 질료삼아 시로 빚으리라.”(65쪽)

한양 땅에서 옥봉은 선비들과 더불어 시를 주고받으면서, 여자가 아닌 문우로서 그들과 어울리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뭇 남성의 연모 대상이 되었어도 의연하게 시만 짓던 옥봉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꺾고 말았다. 이름은 조원이요, 호는 운강이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누대로 장원급제를 한 명문가 출신의 이 남자를 시회에서 처음 만난 순간 가슴이 무너져버렸다. 운강의 얼굴과 음성이 떠날 줄을 몰랐고, 커다란 바윗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답답했다. 첫 만남에 이럴 수도 있다니, 내가 임자를 만났구나…, 옥봉은 탄식했다.

스스로 조원의 소실이 되겠다고 청했지만 정작 그는 오래 뜸을 들이다가 다시는 시를 짓지 않겠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허락했다. 옥봉은 시조차 버렸다. 하지만 핏속에 들끓는 예술혼은 어쩔 수 없었다. 산지기의 아내 청으로 사소하게 지은 시 하나 때문에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결혼 10년 만에 내침을 당한다. 옥봉은 그래도 그 남자 곁을 맴돌다가 온몸에 시를 두루마기처럼 칭칭 감고 물에 빠져 죽었다. 후일 그네의 시를 발견한 명나라 사람들이 시집을 만들어주었다.

“요사이 안부 묻사오니 어떠하신지요/ 창문에 달 비치니/ 이 몸의 한은 끝이 없사옵니다/ 제 꿈의 혼이 발자취를 낸다면/ 임의 문앞의 돌길은 모래가 되었으리(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사랑하는 이를 끝내 잊지 못했던 옥봉의 애절한 명편이다. 이근배 시인은 “아는 것이라고는 없이 짝사랑한 내 여자를 은미희씨가 소설로 부활시켜서 잠들었던 내 영혼에 불을 붙였다”고 발문에 썼다. 은미희씨는 “시와 사랑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면 아직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서도 “나 역시 소설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던 사람이지만 진정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건 사랑뿐”이라고 사랑 쪽에 방점을 찍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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