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봉은 결혼했다가 채 일년도 안 돼 남편이 급사하자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네는 다시 소실자리로 시집을 가라는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시만 쓰면서 시로 세상과 소통하며 시간을 희롱하겠노라고 작심한다. 결국 부친도 딸의 청을 받아들여 그네를 한양으로 보낸다.
“절대로 뒤돌아서서 지나온 자리를 물기어린 시선으로 더듬지는 않을 것이다. 뼈가 에이는 외로움이 저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도 좋았다. 한겨울 이부자리가 얼음장에 누운 것처럼 추워도 좋았다. 그 모든 것들을 질료삼아 시로 빚으리라.”(65쪽)

스스로 조원의 소실이 되겠다고 청했지만 정작 그는 오래 뜸을 들이다가 다시는 시를 짓지 않겠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허락했다. 옥봉은 시조차 버렸다. 하지만 핏속에 들끓는 예술혼은 어쩔 수 없었다. 산지기의 아내 청으로 사소하게 지은 시 하나 때문에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결혼 10년 만에 내침을 당한다. 옥봉은 그래도 그 남자 곁을 맴돌다가 온몸에 시를 두루마기처럼 칭칭 감고 물에 빠져 죽었다. 후일 그네의 시를 발견한 명나라 사람들이 시집을 만들어주었다.
“요사이 안부 묻사오니 어떠하신지요/ 창문에 달 비치니/ 이 몸의 한은 끝이 없사옵니다/ 제 꿈의 혼이 발자취를 낸다면/ 임의 문앞의 돌길은 모래가 되었으리(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사랑하는 이를 끝내 잊지 못했던 옥봉의 애절한 명편이다. 이근배 시인은 “아는 것이라고는 없이 짝사랑한 내 여자를 은미희씨가 소설로 부활시켜서 잠들었던 내 영혼에 불을 붙였다”고 발문에 썼다. 은미희씨는 “시와 사랑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면 아직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서도 “나 역시 소설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던 사람이지만 진정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건 사랑뿐”이라고 사랑 쪽에 방점을 찍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