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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협박에도 흔적 안 남아 외면… '정서적 학대'에 우는 아이들

입력 : 2021-02-20 18:00:00 수정 : 2021-02-20 21: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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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17∼2019년 아동학대사건’ 분석

어린아이 굶기고 감금·협박·물고문까지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가혹하고 잔인해

정서적 학대, 외부에 흔적 남기지 않아
가족·이웃·수사기관 등서 외면당하기 일쑤

폭행 못 견딘 아들 극단 선택에도… 法 "정서적 학대 아냐"
아동권리보장원 "정서적 학대, 신체학대 못지않게 심각"

지난달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 속에 5세, 6세 아동이 내복만 입은채 길거리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양부모 학대 끝에 사망한 정인이처럼 육체적 학대를 당하는 아동 뿐 아니라 ‘한파 속 내복 아동’들처럼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방임과 정서적 학대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20일 세계일보가 아동권리보장원의 ‘2017∼2019년 아동학대사건 판례집’에 나온 주요 사건 판결문을 직접 분석한 결과, 미취학 아동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이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는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가혹하고 잔인했다. 어린 아이를 굶기고, 추위에 내모는 방임 뿐 아니라 조직폭력배들이나 할 법한 감금, 협박, 물고문 등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됐다. 특히 정신적 충격과 공포, 트라우마를 주는 정서적 학대는 신체학대, 성학대, 방임과 동시에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서적 학대는 신체학대와 달리 외부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단순히 폭행에 뒤따르는 자연적인 결과라는 이유로 가족과 이웃, 수사기관, 법원에서 외면당하기 일쑤다. 

 

◆폭행으로 인한 자살 시도 “신체학대의 결과일 뿐 정서학대 아냐”

 

A씨는 아들(15세)에게 공부습관을 길러주고 성적을 올리겠다며 매일 새벽 6시에 깨워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아들 옆에 앉아 감시하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무 몽둥이로 때리거나 기상 시간을 5시, 5시30분으로 앞당겼다. 또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도록 아이에게는 3년간, 다른 가족들에게는 7개월간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외출 후 돌아온 아들은 A씨가 귀가하거나 문을 열어줄 때까지 문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지난 1월 8일 집 근처에서 내복 차림으로 행인에게 발견된 여아가 경찰에 구조되고 있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편의점 CCTV)

그러던중 A씨는 아이의 모의고사 성적이 나쁘고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무 몽둥이로 온몸을 때렸다. 아버지의 폭행과 학대를 피할 방법은 죽음 밖에 없다고 생각한 아들은 두 차례나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구조됐다.

 

수원지법은 지난 2017년 A씨가 아들을 몽둥이로 때린 것은 신체적 학대로 인정된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폭행 후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신체적 학대의 결과에 해당할 뿐 정서적 학대 행위가 별도로 성립한다고 볼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A씨가 새벽에 억지로 공부시킨 것 역시 피해자가 통상 학업에 집중하는 나이라는 점 등을 들어 정서적 학대로 보지 않았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단순한 불편을 감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거공간에 들어가 쉬거나 생활하는 일상적인 이익조자 영위할수 없게 했다”며 정서학대로 인정했다.

 

B씨는 딸(13세)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1시간 동안 주먹을 쥔 상태로 엎드려뻗쳐를 하게 했다. 화장실이 더러운 날에는 파리채로 팔, 다리 등을 사정없이 때렸다. 당시 매질을 당한 후 아이가 방에 들어가 울자 쫓아가 목을 졸랐다. B씨는 전년도에도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돼 보호관찰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부산지법은 2019년 4월 딸에 대한 신체적 학대가 인정된다며 B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체학대로 정신건강 및 발달의 위해가 당연히 수반되기 때문에 정서학대는 별도로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검찰이 기소한 정서적 학대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정서적 학대는 인정할 수 있지만, 신체적 학대에 수반된 정신적 충격이나 고통은 별도의 피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정서학대가 신체적 학대에 수반되는 것은 정서적 학대가 신체학대보다 덜 심각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며 “하지만 정서학대는 지속적이지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체학대 못지 않게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성경책 안읽는다고 한겨울 내복 차림, 위협 운전 ‘정서적 학대’ 인정

 

C씨는 5세, 9세, 13세 세 아이에게 매일 성경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쓰게 했다.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한겨울에 아이들을 내복만 입힌채 교회 앞에서 1시간 동안 떨게 했다. 또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승용차에 강제로 태워 주변 일대 신호를 위반하며 차선을 수시로 변경하고 급제동과 과속을 반복하는 등 난폭운전을 했다.

 

매운 닭발을 먹고 물을 찾는 첫째에게 종이컵에 있는 술을 물이라고 속여 마시게 하기도 했다. 아내의 귀가가 늦으면 아이들에게 엄마에 대한 욕설을 퍼부으며 화풀이를 했다.

 

광주지법은 2019년 11월 C씨의 정서적 학대가 인정된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강의 수강을 선고했다.

◆10대 딸 벌거벗겨 물고문 ‘성적 학대’로 인정

 

D씨는 지난 2016년 10월 딸(당시 12세)이 함께 살기 싫다고 말하자 길이 약 70㎝, 지름 약 4㎝의 철봉으로 팔과 허벅지, 발바닥 등을 사정없이 때렸다.

 

이듬해에는 몰래 고모와 연락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여자친구 소유의 벤츠 승용차 트렁크에 딸을 강제로 태운 후 야산으로 끌고 갔다. 야산에 도착하자 딸을 트렁크에서 내리게 하고는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했다.

 

이후 딸이 고모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자 격분해 딸을 발로 짓밟고 물이 들어있는 1.8리터 용량의 페트병을 입에 대고 강제로 먹였다. 이후로도 휴대전화를 오래 쓴다는 이유로 흉기로 딸을 위협하고, 귀걸이 착용을 위해 뚫어 놓은 귓불 구멍에 볼펜 심을 찔러넣기도 했다.

 

2019년에는 욕조에 찬물을 받아 딸에게 들어가게 한 후 얼굴이 물에 잠기도록 머리를 눌렀다. 딸이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머리를 들자 목 부위를 샤워 수건으로 감아 졸랐다. 물고문을 견디다 못해 욕조에서 뛰쳐나오자 딸의 옷을 모두 벗겨 다시 욕조로 밀어 넣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구지법은 D씨에게 상습아동학대죄와 감금죄, 성희롱 등을 인정해 징역 2년6개월과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 80시간을 선고했다. 주목할 점은 재판부가 물고문 당시 10대인 딸에게 옷을 다 벗고 찬물에 들어가도록 강요한 것이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적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성적학대는 2000년 아동복지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처음으로 금지행위 유형에 포함됐다. 성폭행이나 성폭력에 이르지 않더라도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으로 아동의 건강·복지 및 성적 가치관을 해칠 수 있는 행위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성적 학대가 상습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D씨가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인 딸이 선처를 원한다며 D씨 형량을 징역 1년6개월로 줄여줬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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