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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28일 영아 장애인 만든 학대…'훈육·우발적' 이유로 정상참작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 2021-02-14 08:00:00 수정 : 2021-02-14 1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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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조카 물고문·매질 등 학대… 숨지게 한 이모 부부 등
‘정인이 사건’ 충격 가시기 전에 아동학대 사망사건 잇따라
최근 3년간 각급법원서 아동학대 관련 선고 사건 3000여건
‘우발적’ 동기에 法 ‘정상참작’… 아동학대인식 민낯 드러나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영유아와 어린이 폭행 사망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생후 2주된 아기가 분유를 토했다고 때려 숨지게 한 20대 부모와 2살밖에 안된 딸을 방치한채 이사를 가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친모가 지난 12일 나란히 구속됐다. 앞서 10일에는 10세 조카에게 ‘물고문’과 매질 등 학대를 가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잇따른 아동학대 소식에 철없는 부모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채 끔찍한 학대 끝에 세상을 떠나거나 평생 장애를 겪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이 더 많다.  

 

10살 여아 조카를 욕조에서 '물고문' 하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이모 B씨가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호송되고 있다. 뉴시스

13일 아동권리보장원의 ‘2017∼2019년 아동학대사건 판례집’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각급 법원에서 아동학대와 관련해 선고한 사건은 3000여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보장원이 아동학대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 156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갓 태어난 아기부터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주먹과 목검, 야구방망이, 소주병 등을 동원한 구타 뿐 아니라 ‘물고문’, 감금 등 폭력의 수위와 수법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두 ‘훈육’이라는 목적과 ‘우발적’이라는 동기에서 나왔다. 법원은 이를 정상참작해 감형해주곤 했다. 처참한 아동학대실태는 우리 사회 아동학대인식 수준의 민낯이다. 

 

◆잠 안잔다고 때리고 던지고, 한겨울에 찬물 고문까지

 

A씨는 지난 2018년 생후 28일 된 아기가 새벽에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운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머리, 팔, 다리를 수차례 때렸다. 생후 한달도 안된 아기는 친모의 모진 폭행으로 우측 두골 골절 및 경막외 출혈 등의 상해를 입고 결국 인지, 언어, 운동 장애가 생겼다.

10살 여아 조카를 욕조에서 '물고문' 하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이모부 A씨가 10일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호송되고 있다. 뉴시스

대구지법은 “피고인이 아이의 회복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피해아동은 장애를 가진 채 양육시설에서 자랄수 밖에 없게 됐다”며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아동을 포함한 두 딸을 홀로 키우고 있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운 힘든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한 행위”라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했다.

 

생후 한달도 안된 아이가 친모의 구타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됐고, 다른 자녀 역시 아동학대의 위험에 노출됐음에도 오히려 정상참작 사유로 인정한 것이다.

 

B씨는 남편이 새벽에 출근한 후 생후 8개월인 의붓아이가 깼다가 다시 자지 않고 보챈다는 이유로 90cm 높이에서 안고 있다가 떨어뜨렸다. 당시 바닥에 소음방지매트가 깔려 있긴 했지만, 아이는 급성 외상성 경막밑 출혈과 뇌 손상으로 오른 쪽 팔, 다리가 마비되고 인지 장애 등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됐다.

 

B씨는 아이를 10cm 높이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주치의와 법의학자 분석 결과 훨씬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강한 충격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온 몸에서 꼬집고 깨물린 상처가 발견됐다. B씨는 6차례 정도 꼬집었다고 했지만, 법의학자는 “피해 아동 몸에 멍이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분포, 최소 20차례 이상 외력이 작용한 손상”이라는 소견을 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구고법은 B씨가 새벽에 예민해진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폭행을 저질렀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을 감안했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C씨는 동거남의 7세, 5세 두 아이와 함께 살면서 첫째 아이가 집에서 말을 하지 않고 우울해 하고 있다는 이유로 효자손으로 머리와 손바닥 등을 때렸다. 효자손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던 C씨는 벌을 받아야 한다며 한겨울인 12월에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가게 한 후 샤워기로 아이 몸에 찬물을 뿌려댔다. 이듬해 1월에는 자신의 아버지 산소에서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아이 모두 구타한 후 또다시 벌거벗겨 찬물 고문을 했다. 

 

전주지법은 당시 아이가 법정에 출석해 학대당한 시기와 장소, 방법, 경위 등을 일관되게 진술한다며 B씨의 유죄를 인정,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야구방망이, 소주병 휘두르며...훈육이라는 이름의 가혹행위

 

D씨는 이혼 후 동거녀와 살면서 친딸(15)이 동거녀의 물건을 훔친다는 이유로 학교를 가지 못하게 하고 집에 가뒀다. 외출 할 때는 운동화 끈과 휴대전화 목줄로 딸의 양손과 양발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소리를 지를까봐 스타킹을 입에 물리고 운동화 끈으로 입을 묶기도 했다. 

 

또 버릇을 고치겠다며 주먹으로도 모자라 야구방망이와 효자손으로 얼굴, 머리, 엉덩이 등을 가리지 않고 때려 골절상을 입혔다. 법원 판결문에는 공개되지 않은 ‘위험한 물건’으로 6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친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에 시달리던 아이는 자해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D씨는 딸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3개월간 폭행이 집중됐고, 아이의 일탈행동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정상참작을 받아 창원지법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E씨는 동거녀의 10세 자녀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 훈계한다면서 아이 목에 폭 1.5cm, 길이 약 3m의 쇠사슬을 둘러 침대에 묶어놨다. 아이는 쇠사슬에 묶인채 무려 15시간을 꼼짝없이 혼자 방에 갇혀 있었다.

 

재판부는 아이가 엄청난 공포 충격을 받아 회복하는데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E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친모와 연락이 끊긴 아이가 보호시설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E씨에게 돌아가길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E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아내와 떨어져 살던 F씨는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아이를 데려와 키우면서 폭행하기 시작했다. 한자 시험을 많이 틀렸다는 이유로 9세인 아이가 코피가 날 정도로 뺨을 때렸다.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들어온 날에는 아이를 발로 밟고 빈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아이에게 흉기도 집어던졌다. 

 

아이가 13세 되던 해에는 말대꾸하고 심부름을 하지 않는다고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가죽 혁대로 수십 차례 때렸다.

 

수원지법은 2017년 F씨의 행위가 훈육을 넘어선 신체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뺨을 맞고 코피가 잠깐 났지만 밖으로 흘러내리지는 않았다’는 피해자 진술에 따라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 장애를 초래하는 상해에 준하는 정도로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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