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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기준 공개하라” 할 말 하는 직원들의 부상 [데스크픽]

입력 : 2021-02-09 08:00:00 수정 : 2021-02-09 10: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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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 행동주의로 이어질까
SK하이닉스발 성과급 논란 확산… 기업 긴장
MZ세대, 핵심 소비층이자 조직 중심축 부상
구성원 행동주의, 자발적 집단행동 현상 뜻해
‘평생직장’ 옛말… SNS 등 통해 집단 의견 표출
전문가 “과거와 달리 할 말하는 직원들 넘쳐
구성원 행동주의 빠르게 확산할 것” 전망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이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의 통칭)의 부상이 이번 논란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투명한 보상체계와 사내 소통이 중요한 경영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에서 33%가량(2019년 통계청 추계)을 차지하는 MZ세대는 기업들이 공 들여야 할 핵심 소비층이자, 주요 기업 구성원의 60%에 달하는 조직의 중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사측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거나 장외투쟁을 하는 기존 노동조합과 달리 사내 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출한다. 그 목소리는 단순히 임금에 대한 불만에 한정되지 않고 회사 운영 전반에 걸친 공정성과 투명성, 사회적 책임과 가치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할 말은 하는 직원’들의 부상이 몇년 전부터 구글, 아마존 등 해외 기업에서 시작된 ‘구성원 행동주의’(Employee Activism)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MZ세대의 부상...‘평생직장’, ‘임원은 기업의 꽃’은 옛말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은 회사측이 2020년분 초과이익배분금(PS) 규모를 공지한 뒤 사내게시판에 ‘PS 산정 방식을 공개하라’는 직원들의 불만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특히 처음 공개질의를 통해 문제제기 한 직원은 입사 4년차로 알려졌다. 이 직원은 이석희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PS 산출 방식과 계산법, 영업이익 5조원을 맞추기 위해 PS를 깎았다는 임원 발언의 진위, 삼성과의 임금 격차로 인한 사기 저하에 대한 해결책 등을 조목조목 따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도 성과급에 대한 불만과 회사를 성토하는 SK하이닉스 직원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성과급 논란은 곧 계열사인 SK텔레콤 뿐 아니라 경쟁사인 삼성전자,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 등 다른 대기업으로 옮겨붙었다.

사진=뉴스1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젊은 직원들은 임원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과거처럼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 언제 나갈지 모르니 바로바로 보상받길 원한다”고 전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집 값이 너무 오르고 현금가치는 떨어지니, 아무리 대기업 직원이라고 해도 집 한채 사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성과급이나 월급에 더 민감해지는 것 같다”며 “당장 성과급 받아 주식 투자라도 하자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아닌 사내 게시판, SNS에 집단적 의견 표출

 

임금 문제는 통상 노사협상 테이블에 올라가는 이슈인데도 불구하고 노조가 나서기 전 젊은 직원들이 먼저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이슈를 공론화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내 익명 게시판이나 블라인드 앱 등을 통해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일은 흔하지만, 신원이 드러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개 질의를 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SK하이닉스의 한 중견 직원은 “입사 이래 직원이 보낸 단체 이메일은 처음 받아봐서 깜짝 놀랐다”며 “하지만 성과급 기준 공개를 요구한 입사 4년차 직원의 메일은 항의나 투쟁 성격이라기 보다는 회사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예의를 갖춘 메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평균 노조가입률이 11.8%에 머물며 노조가 구심적 역할을 하는데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경영진과 노조를 향한 구성원들의 시각과 소통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났다고도 볼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애사심 높고 인정받는 직원들이 주도하는 구성원 행동주의

 

직원들이 회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개진하고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현상을 구성원 행동주의라고 한다.

 

기존 노조들이 부당 노동행위나 임금, 비정규직 등 경제적인 문제에 집중했다면, 구성원 행동주의의 주제는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사내 성추행이나 갑질 문제 뿐 아니라 윤리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으로 저변을 넓혔다. 주체 역시 강성 노조원이 아닌 평범한 직원들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에서는 애사심이 높고 회사로부터 인정받는 인재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페이스북 직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폭력 조장 메시지를 감추지 않기로 결정한 마크 저커버그 CEO의 결정에 항의하며 본인 디지털 프로필에 ‘부재중’이라는 메시지를 띄우는 방식으로 ‘가상 파업’에 돌입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AP연합뉴스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올리자, 트위터는 “폭력을 미화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그의 트윗을 감추는 조처를 취했지만, 페이스북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당시 페이스북 팀장급 뿐 아니라 임원들도 개인 트위터 등을 통해 저커버그의 결정을 비판하며 가상 파업에 동참했다. 결국 저커버그는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해명하고, 인권 단체에 1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구글 직원들은 지난 2018년 11월 성희롱 사건에 연루된 고위 임원이 9000만 달러의 퇴직금을 받고, 회사가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 것에 항의해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였다. 당시 일본 도쿄에서 시작된 시위는 하루 만에 전세계 50개 도시 2만 여명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있었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에 대한 ‘미투’ 폭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입사원 명퇴’ 등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사건 상당수가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폭로하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다. 

지난 2014년 12월 30일 '땅콩 회항' 사태로 물의를 빚어 구속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서울 서부지검에서 남부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할 말은 하는 직원들, 구성원 행동주의 확산’ 보고서를 쓴 LG경제연구원의 이창진·김현기 연구원은 이같은 구성원 집단행동 확산의 핵심 배경으로 MZ세대의 등장과 SNS의 발달,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확산을 꼽았다.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이제 할 말을 하는 직원들이 넘쳐 나는 세상이 됐다”며 “앞으로 기업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근로자 인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강화되면 구성원 행동주의는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직원들의 행동주의에 잘못 대응했다가는 기업 이미지 하락, 우수 인재들의 이탈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개별 구성원에 대한 정교한 의견 청취와 세대와 계층별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사내 소통 채널을 적극 운영하는 한편, 경영진이 과거보다 더 높은 기준의 윤리성과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고 연구원은 조언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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