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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의공감산책] 코로나19 위기 앞에서 심리적 균형을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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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24 23:17:06 수정 : 2020-02-24 23: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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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들 흰색·흑색 마스크 무장 / 경계심은 동물 생존에 필수적 / 지나친 공포 지나친 낙관 아닌 / 경계와 휴식 사이 균형 취해야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한 달이 이미 지났다. 한동안 진정되나 싶었는데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폭증하고 사망자까지 속출하고 있다. 한산한 거리엔 행인들 대부분이 흰색과 흑색의 마스크로 무장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교수 심리학

마스크를 쓰게 되면 사람들의 눈 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만큼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데 한계가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마스크를 쓴 사람의 분노나 공포와 같은 부정적 심리를 타인이 인식하는 데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행복이나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 심리를 인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어 실제 감정보다 훨씬 더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화가 나거나 공포에 젖은 얼굴은 주로 미간에 인상을 쓰게 되어 마스크를 쓰더라도 그대로 전달되지만, 즐거움이나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눈뿐 아니라 입 주변을 움직이기에 전달력이 감소한다. 마스크 쓴 사람들이 넘치면서 전염병으로부터 서로를 보호 한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불안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계심(vigilance)은 모든 동물에 있어 생존에 필수적이다. 상위 포식자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늘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경계가 가장 취약해지는 때는 수면을 취할 때이다. 그렇다 보니 경계와 수면 간에는 상호 교환, 즉 트레이드-오프 (trade-off) 관계가 있다. 경계에 너무 치중하면 숙면을 할 수 없고 반대로 숙면에 너무 치중하면 경계가 취약해진다. 그렇다보니 동물들마다 이러한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서 최적점을 찾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예를 들어 병코돌고래는 마치 수면에 떠 있는 통나무를 연상케 할 정도로 깊은 수면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돌고래는 수면을 취할 때 뇌의 한쪽 반구체 (hemisphere)는 닫아놓고 반대편 뇌는 열어 놔 경계를 풀지 않는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제 순서를 교체해 반대쪽 뇌를 쉬게 한다. 진화는 이렇게 경계와 휴식의 절묘한 균형을 통해 생존 확률의 극대화를 도모한 것이다.

경계심은 결국 불안과 공포에서 출발한다. 포식자에게 먹힐지 모른다는 불안이 없으면 경계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걸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매일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교통사고로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런 불안감이 있다면 길을 걸으며 계속 하늘을 보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가능성이 희박한 사고에 불안감을 느껴 경계를 하다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뇌가 피로를 이겨내지 못해 다른 생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경계할 대상과 경계를 하지 않을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 경계하지 않아도 될 대상을 걸러내기 위해 인간이 본성적으로 진화시킨 것이 바로 낙관적 편향(optimism bias)이다. 일상의 사소한 불안을 자각하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가게 해주는 힘이다.

낙관적 편향에 의해 ‘나는 절대로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안일함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중 모임에 참석한다. 더 나아가 자가격리 조치를 받게 되더라도 ‘설마 내가 걸렸겠어, 내가 전파시키겠어’라는 낙관적 편향이 작동해 경계심을 낮추게 된다. 이런 비현실적 낙관성은 이후 재앙이 되어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며칠 사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결국 위기경보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가 선포되었다. 극한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남 탓을 시작한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특정 종교나 특정 지역에 대한 비난, 정부에 대한 비난, 전문가와 행정가 간의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럴 경우 지나친 불안과 공포감으로 집단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패닉은 이성에 의한 판단을 어렵게 하고 감정에 의존케 한다. 그래서 비난과 혐오, 갈등과 분열로 사회 전체를 몰락시킬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지나친 경계심이 작동되어서다. 지속되는 경계심은 심리적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우리 사회의 긴장과 갈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이제부터 포식자에 대한 경계와 휴식 사이의 균형을 취해야 할 시점이다. 지나친 공포도 지나친 낙관도 아닌 균형이 절실하다.

 

곽금주 서울대교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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