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부품 의존도를 꾸준히 낮춰온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일본의 전방위 수출규제와 관련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래차 핵심부품 국산화 시점이 더 빨라져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물론 넘어야 할 장벽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연기관은 국산화율이 95% 이상이어서 일본 이외 국가에서 부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수소전기자동차의 연료탱크에 사용되는 탄소섬유나 자율주행차의 카메라 렌즈는 일본 의존도가 높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탄소섬유’는 일본이 세계 시장의 66%를 점유하고 있다. 도레이, 도호, 미쓰비시레이온이 선두업체다. 탄소섬유는 일본 내에서 전략물자로 지정돼있어 해외 수출할 때 승인이 필요하다.
최근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무역위원회의 ‘2018년 탄소섬유 및 탄소섬유 가공 소재 산업 경쟁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탄소섬유 기술 경쟁력은 99점을 받은 일본, 89점을 받은 미국·독일보다 한참 못 미치는 73점으로 평가됐다. 보고서에서는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탄소섬유의 글로벌 경쟁력은 일본의 78%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일본이 탄소섬유 수출을 규제할 경우, 향후 수소전기차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한다. 현대자동차 넥쏘의 경우에는 수소탱크를 공급하는 일진복합소재가 수소탱크 원료인 탄소섬유를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일진복합소재 측은 “수소탱크용 탄소섬유는 도레이첨단소재의 구미 공장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한다”며 “도레이첨단소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탄소섬유 원료도 수입에 차질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차는 효성첨단소재와 함께 공동으로 고강도 탄소섬유 개발에 착수해 빠르면 올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부 수소전기차 부품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전체적으론 이미 국산화율이 높은 상태”라며 “수소전기차가 전체 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아 규제가 닥치더라도 경영상 타격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은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초정밀 카메라용 광학렌즈의 원천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미래차 소재는 대체품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 같은 기술의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달 한국광기술원은 자율주행차와 같은 최첨단기기의 광학렌즈 및 모듈 산업화에 나섰다. 한국광기술원 김영선 원장은 “광학렌즈 모듈의 고부가가치화를 실현하겠다”며 “광학렌즈 분야의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핵심 소재부품의 내재화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제품으로 구성된 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도 대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현대차그룹 생산라인의 공정 제어장치인 PLC는 과거 협력관계였던 미쓰비시 제품들이다. PLC는 LS산전이나 독일 지멘스 등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현재 공장에 설치된 장비를 모두 교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는 일본산 생산설비를 대체할 수 있는지 내부 조사에 착수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번 한·일 경제전쟁을 계기로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에 더욱 속도를 내고 미래차 기술 개발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근 수소연료전지와 전동화 부품 생산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향후 3년간 약 4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현대모비스가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현대모비스는 3800억원을 들여 충주 공장 수소연료전지 라인을 증설하고 있으며, 울산에 약 3300억원을 들여 전동화 부품 제2생산거점을 세울 예정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수소전기차 핵심부품을 판매하고 비차량용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자율주행, 전동화,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향후에도 투자를 더욱 늘리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미래차 시대를 선도해 나간다는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3년간 소재 부문에서만 △헤드램프 플라스틱 소재 △리어램프 하우징(구조물을 고정해주는 뼈대) 소재 △커튼 에어백 전개 가이드용 소재 등을 국산화한 바 있다. 모두 일본 업체로부터 수입하던 소재다.
이와 관련해 김홍찬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를 핵심소재의 국산화 확대 기회로 활용하면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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