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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최순실 변호인은 왜 '궁예 관심법'을 거론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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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24 14:02:35 수정 : 2018-08-24 15: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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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안방극장 강타했던 인기드라마 ‘태조왕건’에서 착안한 듯 / "옴마니반메홈" 주문 외며 "네 마음 보았다"는 말로 신하들 위협
“앞으로 묵시적 공모 인정을 합리적이고 엄격한 기준 없이 확대한다면 후삼국시대 궁예의 관심법이 21세기에 망령으로 되살아나 수많은 원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 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가 24일 최씨 등 항소심 선고공판 직후 내놓은 입장문 일부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는 최씨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1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심보다 가중된 징역 25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1심보다 감경된 징역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뇌물을 받은 박 전 대통령과 뇌물을 건넨 대기업 총수 간의 묵시적 청탁 공모를 인정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씨 간의 묵시적 공모를 인정했다. 이에 이 변호사는 “이른바 묵시적 의사 공모에 대한 재판부의 유죄 논지는 대단히 위험하다”며 “이 묵시적 공모 법리를 재판부가 배척하지 못한 것은, 법리의 문제라기보다 촛불정권에 대한 사법적 용기의 문제”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KBS 대하사극 ‘태조왕건’의 궁예(배우 김영철 분).
이 변호사가 예로 든 ‘후삼국시대 궁예의 관심법’이 눈길을 끈다. 이는 2000∼2002년 방영돼 안방극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KBS 대하사극 ‘태조왕건’에서 착안한 표현으로 풀이된다. ‘태조왕건’의 주인공은 당연히 고려 태조 왕건(최수종 분)인데 드라마 초반 고려의 전신인 후고구려(훗날 태봉)를 세운 궁예(김영철 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면서 지금도 드라마 ‘태조왕건’ 하면 최수종이 연기한 왕건보다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 캐릭터를 더 친숙하게 떠올리는 이가 많다. 둘 외에 견훤(서인석 분) 캐릭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후고구려가 처음 건국했을 때 궁예가 임금, 왕건은 그의 충직한 신하였다. 궁예는 원래 현명하고 어진 군주였다. 그런데 궁예가 어느날 자신이 ‘미륵불’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며 불행이 시작됐다. 불교에서 미륵불이란 미래의 부처를 뜻한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존재가 바로 미륵불이다. 궁예는 자신이 바로 그 미륵불이라며 “내게는 신기한 능력이 있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그게 바로 타인의 마음속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 바로 ‘관심법(觀心法)’이다.

평소 “옴마니반메홈”이란 희한한 주문을 외고 다니는 궁예는 “내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법으로 알아볼 수 있다”며 신하들을 마구 닦달했다. 예를 들어 어느 신하에게 “너 지금 나를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지. 내가 다 보았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 “나는 너의 마음을 볼 수 있으니 당장 너를 죽이겠다”며 정말로 ‘망나니’(죄인의 목을 베는 사람)를 불러 사형을 집행했다. 신하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궁예는 신하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죽어 간 신하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궁예는 심지어 자기 부인인 왕비과 아들인 왕자들까지 살해했다.
자연히 모든 사람들이 궁예 앞에서 벌벌 떨었다. 궁예가 가장 아낀 왕건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날 궁예는 왕건에게 “네 마음을 들여다보니 너도 나를 배반할 준비를 하고 있구나”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냥 장난을 친 것인지 아니면 왕건의 속마음을 떠보려는 일종의 덫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겁에 질린 왕건은 바로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러자 궁예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겠다”며 넘어갔다. 역사학자들은 그때부터 왕건이 ‘궁예는 정상이 아니다. 더 이상 임금으로 섬길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본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능가할 정도였던 궁예의 폭정은 결국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다. 지방 권력을 장악한 호족들이 궁예에게 등을 돌리고 왕건을 새 임금으로 추대할 뜻을 밝히자 마침내 왕건도 이를 받아들이고 반란을 일으킨다.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로 고치고 곧 후백제와 신라를 합병, 역사상 2번째 삼국통일을 달성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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