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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깨지는 독자 핵무장 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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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01 23:48:02 수정 : 2024-05-01 23: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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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고립주의, 동맹국 좌불안석
무기·안보 지원 축소, 핵 개발이 답
NPT의무 위반·제재 등 난제 수두룩
새 국가전략 짜고 국민 공감 넓혀야

1970년대 초 한국은 심각한 안보위기에 처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닉슨 독트린)’며 주한미군 병력의 약 3분의 1인 7사단(2만명)을 철수했다. 깜짝 놀란 박정희 대통령은 이스라엘 수준의 자주국방을 목표로 비밀리에 핵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완전철수를 공언해 박정희와 극심한 갈등을 빚었고 핵무장 움직임도 가속화됐다. 프랑스에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재처리 기술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캐나다와도 중수로 도입계약을 맺었다. 핵 개발은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미국의 압력에 좌절되고 말았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던 한국의 핵무장 금기가 깨지기 시작했다. 닉슨 독트린을 연상케 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집착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트럼프는 동맹을 ‘미국에, 미군 주둔에 무임승차하는 기생충’(천영우 전 대사)으로 여긴다. 그는 집권 당시(2017∼21년)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하고, 그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겁박했을 정도다.

주춘렬 논설위원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는 더 독해졌다. 그는 2월 유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향해 “(방위비 인상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의 침공을 독려하겠다”고 했다. 파장이 커지면서 2차 대전 전범국인 독일조차 자체 핵무장의 목소리가 나오는 판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왜 우리가 아주 부유한 나라를 방어하느냐”(타임지 인터뷰)고 반문한다. 트럼프 재집권 때 국방부 장관으로 거론되는 크리스토퍼 밀러는 “한국이 더는 무기체계나 안보지원을 미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 공화당 외교·안보 전략통인 엘브리지 콜비는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는 대신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와중에 북한의 핵 폭주는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김정은은 2022년 핵 선제 타격 법제화 후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쏴댄다. 북핵 통제 고삐도 느슨해지고 있다. 한 달 전 러시아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대북제재감시망인 전문가 패널을 해체했다.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한반도를 겨냥해 16대의 핵 폭격기를 동원해 공습훈련을 감행했다. 산술적으로 64∼96발의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데 북한까지 가세한다면 수백발의 미사일과 핵탄두가 우리 머리 위에 쏟아질 수 있다. 아무리 촘촘한 방어망을 짠들 거대한 버섯구름의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

핵 공격을 억제할 방법은 독자적 핵무장을 빼고는 달리 없다. 미 외교가 대부 헨리 키신저는 “이웃 국가가 핵을 보유할 때 같이 핵을 보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2기는 50년 전 좌절됐던 한국 핵 개발의 호기일 수 있다. 트럼프식 고립주의의 이면에는 쇠락하는 국력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제 미국은 홀로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분쟁과 갈등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한국과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당장 핵무장에 나서기는 어렵다. 국제사회가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제재에 들어갈 수 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한국 외교·안보 전문가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53%가 경제 제재 및 국제규범 위반, 한·미동맹 손상 등을 이유로 핵 보유를 반대했다.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외교·안보와 과학기술, 경제·산업을 아우르는 국가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우선 한·미 핵협의그룹과 한·미·일 공조에 치중하면서도 잠재적 핵 역량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인도가 우호적인 대미 관계를 지렛대 삼아 강력한 제재는 피해 가면서 자체 핵무장으로 나간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일본과 공동 핵 개발을 모색할 수 있다. 국민 공감대를 넓히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국내정치와 여론이 이념과 정파에 따라 사분오열돼서는 산적한 장애물을 넘을 수 없다. 어떤 정파적 이익도 국가 안위와 국민 생명에 우선할 수는 없다. 정쟁은 국경 앞에서 멈춰야 한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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