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물질·핵시설·핵무기 폐기·검증의 큰 축은 기본적으로 미국 국무부와 핵무기 연구와 개발·제조·실험을 관할하는 에너지부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국무부와 에너지부 소속 대규모 핵 전문가들이 작업을 주도하되 국방부와 미군을 포함하는 다국적군이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의 전언이다.
외교 소식통은 14일 “미국은 민감한 물질과 시설을 민간인이 들어가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군 병력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며 “북한 전역에 북한이 숨겨놓은 핵시설과 핵물질을 파악하고 회수하기 위해서는 병력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관건은 북한의 진정한 핵 폐기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북한이 핵 폐기 과정에서 속임수를 쓸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 확실한 방식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다국적군 투입까지 검토하는 배경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만 북핵 검증을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IAEA도 당연히 북핵 사찰 작업에 참여는 하겠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IAEA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닌 미국이 직접 주도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의 거의 모든 핵·미사일 시설은 군사시설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IAEA가 사찰을 주도하면 북핵 검증 수준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규모 다국적군 투입을 염두에 둔 사찰·검증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속전속결의 북핵 폐기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거 북핵 합의는 동결→불능화→신고→검증→폐기 5단계로 이뤄졌으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 차원에서 이미 제조한 핵무기의 역외 반출부터 요구한 상태다.
제임스 릴리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과거 북한이 북한 내 1만1000개 땅굴에 플루토늄을 저장한 핵무기 제조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아마노 유키야(天野之彌) IAEA 사무총장은 2016년에 북한이 영변의 제1 우라늄 농축공장 이외에 제2 농축공장을 건설하고 가동 중이라는 경고를 한 바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시그프리트 해커 박사는 지난해 12월 한국 방문 당시 북한이 영변의 제1 우라늄 농축공장을 확대해 4000여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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