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기자와 만납시다] 차가 오지 않는 빨간불 건널목…당신의 선택은?

입력 : 2017-02-11 08:00:00 수정 : 2017-02-11 11:16: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뭐가 급해서 빨간불에 건너고 그래….”

최근 점심을 먹으러 동료와 길을 가던 직장인 김모(30)씨는 빨간불에도 건널목을 건너는 한 남성을 보고 중얼거렸다. 왕복 2차선 도로여서 후딱 건널 수 있다 해도 엄연히 빨간불인데 당연하다는듯 신호를 지키지 않은 행동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내 김씨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두세 사람이 바로 그를 따라 빨간불에도 건널목을 가로지르는 게 아닌가.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동조심리’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기반을 둬 상황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빨간불에 건널목을 가로지르는 게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누군가 건너니 따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곽 교수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곳에서 그런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고 말한다.

당신이 왕복 2차선 도로의 건널목 앞에 선 보행자라고 가정해보자. 신호등에는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주위에는 차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건널까 말까 고민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먼저 건넌다면 당신은 그를 따라갈까? 마음만 먹으면 건너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지난 9일 서울 청계천 광교 인근 편도 1차선 건널목의 모습. 5초 안팎이면 건널 정도로 폭이 매우 좁다. 보행자 신호는 빨간불. 하지만 건널목에 접근한 차는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선택은?



지난 9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와 광교 일대 건널목을 관찰했다. 인근에서 가장 폭이 좁은 도로는 편도 1차선인데, 보통의 1차선보다는 조금 넓다. 7~8걸음이면 충분히 건널 수 있다.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보행자의 동조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오후 2시30분부터 모전교를 등을 지고 종로 방향 건널목 3곳을 지켜봤다. 인근에는 편도 1차선과 3차선 그리고 왕복 4차선 등이 얽혀있다.

빨간불도 아랑곳않는 이들이 50명이 된 순간 시계를 봤더니 오후 2시51분이었다. 관찰을 시작한 지 불과 21분이 지났을 뿐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잘못된 시민의식은 이후에도 계속 목격됐다. 빨간불이 들어온 건널목 두 곳을 단번에 건너는 이도 몇 명 발견됐다.

동조심리가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빨간불에도 건너는 이를 곁에서 지켜보고도 파란불이 될 때까지 13명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서 있었다. 4명이 보행자 신호를 위반하는 동안 1명이 지킨 셈이다. 이들은 왜 신호를 지켰을까? 직접 물었다.

 

지난 9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 인근 편도 3차선 건널목의 모습. 파란불에 천천히 건너보니 15초 정도 걸렸다. 신호를 위반하기에는 다소 무리인 거리일까?



광교 근처 건널목에서 만난 김하늘(25)씨는 빨간불에도 무단 횡단하는 한 남성을 보고는 “빨리 건너는 게 습관화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혼잣말로 “뭐가 그리 급할까. 기다리면 되는 건데”라고 내뱉는 김씨를 우연히 옆에서 지켜본 뒤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매일 광교를 지난다는 진동훈(35)씨는 “(횡단보도) 폭이 좁다고 빨간불에 건널 이유는 없다”며 “그렇게 건너나, 건너지 않으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 차는) 거의 똑같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빨간불에 건너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진씨는 빨간불에 휙 하고 건너가 버리는 시민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기자와 만났다.

모전교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솔직히 차가 오지 않을 때 빨간불이어도 건넌 적 있다”고 말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 중인 보행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신호를 지키는 광경과 맞닥뜨리기는 쉽지 않았다.  운좋게(?) 딱 한 번 모전교 근처 건널목에서 목격했다. 차가 다니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건널 수 있는데도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6인을 지켜보는 내내 뿌듯했다.

 

딱 한 번. 지난 9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 근처 건널목에서 신호를 대기 중인 보행자 모두 유혹에 빠지지 않고 파란불로 바뀌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시민들을 포착했다. 사진 속 6명이 주인공. 차가 다니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건널 수 있는데도 이들은 시민의식을 발휘했다. 사진은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의 모습.



곽 교수는 “건널목에서는 도덕적 해이의 기초 원리를 관찰할 수 있다”며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다른 사람도 법을 위반하는 만큼 자신이 저지른 불법의 책임은 분산된다고 여기는 게 보통이라 위법행위의 수위는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곽 교수는 강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343명 중 무단횡단이 원인을 제공한 사례는 117명(약 35%)으로 나타났다.

오는 2020년까지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선진국 주요 도시 수준인 2명까지 내리겠다던 서울시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요원한 실정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그릇된 시민의식을 버리고 준법의식은 다지는 일이 가장 필요해 보인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