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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세월의 흔적 유물 발굴하듯… 소박한 한국적 원형미 추구”

입력 : 2016-04-21 22:08:44 수정 : 2016-04-21 22: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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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질감을 건져올리는 조각가 이영섭 조각은 나무를 깎거나 돌을 쪼아 만든다. 주물이나 용접 등을 통해 금속을 조형화하기도 한다. 요즘 들어선 설치조각이 대세다. 하지만 조각가 이영섭(53)은 조각에 대한 기존 통념들을 뒤집어 버린다. 모래가 섞인 황토 위에 형태를 그리고 파낸다. 그러곤 시간이 담긴 퇴적암이나 칠보석 등의 파편들을 깔고 시멘트를 채운다. 흙을 덮고 며칠을 기다렸다가 파내는 방식이다. 조각을 발굴 유물처럼 땅속에서 끄집어 내는 것이다. 이른바 ‘발굴 조각’이다.

그가 세계 조각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법을 창안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 어린 시절 목수였던 아버지에게 들은 여주 고달사지 이야기다. 신라 때 창건한 고달사는 고려시대엔 큰 사찰로 번창했다. 지금은 폐사지로 고려시대 부도탑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달사지 전설에 따르면 고달사의 석조물들은 고달이란 석공의 넋이 스민 작품이라고 한다. 불사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족이 굶어죽은 줄도 몰랐던 고달은 스스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고, 훗날 큰 스님이 되었으니 절 이름도 고달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교와 문학, 철학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가 종종 언급한 산 너머 고달사지를 정작 그가 직접 찾은 것은 대학 졸업 후다. 테라코타 작업으로 이름을 떨친 시절이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테크닉이 뛰어나 교수들도 작품을 사줄 정도였다. 그는 그 돈으로 동료 학비까지 보탰다. 테크닉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최고라는 소리는 여기저기서 찬사처럼 쏟아졌다.

흙속에서 발굴하듯 캐낸 작품들을 물로 씻어낸 후 앉아 있는 이영섭 작가. 그는 황토 물을 입히거나 최소한의 스크래치로 형상을 마무리한다.
“어느 날 문뜩 제가 테크닉적 요소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밀려왔어요. 이러다간 조각이라는 본래의 길을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요.”

그는 그날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작품 모두를 포클레인으로 부숴 버렸다. 곧바로 무언가에 홀리듯 고달사지로 이끌렸다.

“당시 발굴 현장을 바라보면서 시간성의 장엄함을 전율처럼 느꼈어요. ‘조각이 뭔가?’ 근본적 질문에 봉착하게 됐지요.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발굴 현장의 시간성이 바로 예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7년이란 시간을 그렇게 지켜보기만 했다. 명문이 새겨진 조각 난 기왓장들을 시간 속에 담아두고 싶었다. 유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담긴 유물 같은 조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시간의 흔적들을 땅에 묻고 다시 캐내는 ‘발굴 기법’을 생각해 냈지요.”

그는 10대 때 고향 마을에 그가 만들어 세운 4H 표지석이 떠올랐다. 땅을 파내 모래와 시멘트를 부어 만든 것이다. 당시엔 운동을 위한 ‘시멘트 역기’도 그렇게 만들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세월의 흔적을 지닌 퇴적암 조각 등이 첨가되는 것이다. 최근엔 18세기 조선백자의 대표적 가마터에서 가져온 백자 파편과 번천리 등지의 가마터에서 주워온 분청자 파편도 작품에 쓰고 있다.

“비록 파편이지만 유약이나 태토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왔어요. 요즘 도자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경험이지요.”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도자기를 잘 안다. 어린 시절 놀이터가 이모부가 운영한 여주 도자기 공장이었다. 도자기 가마는 그의 놀이시설이었다. 자연스레 유약, 성형은 물론 가마까지 만들 줄 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탐구는 세계여행으로 이어졌다. 

“터키 이스탄불 블루모스크의 돔 천장에 가득한 청화 타일이 고향 가을 하늘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냈어요. 모태 유전자 기억이라고나 할까요.”

그는 청화로 가득한 이슬람교 특유의 형상 없는 빈 공간에서 우주를 떠올렸다. 로마에서 마주친 수많은 형상들에서 느낀 지겨움과는 전혀 달랐다. 사실 터키는 동양의 끝자락이 아닌가.

“형상만을 보려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할 겁니다. 인간이 오랫동안 추구한 비움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등지에서 본 서양조형물에선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기술만 난무한 모습으로 비쳤다. 반가사유상과 달항아리가 주는 울림이 더 강하게 가슴을 울렸다. 그의 심성의 유전자는 산골 화전민촌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교사로 발령이 났어요. 3주 만에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만두고 그길로 양구 화전민촌으로 들어갔지요. 한 할머니 댁에 기거하며 그림만 그렸어요.”

그는 그때 아름다움이란 것이 인위적이거나 외형적인 형상이 아니라는 것을 가슴으로 깊게 깨달았다.

“분명 내 앞에 있는 할머니의 외형적 이미지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적어도 표피적, 유미적 아름다움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인간적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그는 할머니를 만난 이후 그동안 배운 서양조각을 내려놨다. 전국을 떠돌며 산야에 널려져 있는 우리 조각을 찾아 나섰다. 불교조각은 물론 동자석까지 스승으로 삼았다.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허무해졌다. 속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에 나오지 않은 조각들에서 답을 찾아 갔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애불과 사찰의 나한상도 그 중에 하나다.

“설치조각이 대세인 시대에 한국조각을 체계화하겠다고 덤비는 제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어요. 게다가 저는 먹고사는 문제도 내던져 버렸지요.”

그는 부도탑의 단순한 형태가 1000년간 이어온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10년의 세월을 또 그렇게 보냈다. 고달사지의 부도탑을 달밤에 가서 보는 세월만 7년을 보냈다. 고달이란 사람의 마음결을 돌을 쪼아낸 결에서 보았다. 조각할 당시의 석공의 마음 상태까지 읽혀졌다. 때론 거칠고 격렬했다.

“한국조각의 정수는 여백에 있습니다. 서양의 형상은 명암대비가 강렬하지만 우리 조각은 형상이 어렴풋해요. 대표적이 예가 마애불입니다. 상체는 입체지만 하체는 암각화 같은 평면그림처럼 처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방식입니다.”

그는 이런 특질들이 조각의 여백으로, 한국조각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성기게 모자란 듯 거칠고, 미완성된 듯한 빈틈이 심적으로 편안함을 가져다 줍니다. 오랜 세월 내공으로 기술을 넘어선 단계라 할 수 있지요.”

그의 지난 30년도 이런 단계를 부여잡고자 했던 세월이었다.

“비석의 귀부에 다리가 떨어져 나가자 석공이 다리를 등 뒤에 암각으로 새겨 넣은 것을 보았어요.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랬을까요. 서양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는 기술을 넘어선 간절한 삶에 이르는 길이야말로 조각의 최고 경지라 했다.

“한 미술관에서 소장한 허깨비 조각을 아트상품화하기 위해 기술자들을 동원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실패를 하고 말았지요. 아무리 깎아도 ‘못생겼지만 너무 좋은 ’맛을 살리지 못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배움도 내려놔야 하는 단계라고 했다.

“아마도 산골 할머니한테는 가능한 작업이었을 거예요. 결국 우리 기술이 어떤 부분으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지요. 기술이 아닌 진정한 삶의 단계라 어려운 것입니다.”

그동안 수없는 떠돎은 그에게는 기술을 내려놓기 위한 고난의 긴 여정이었다.

“피카소는 어린아이 같이 그리는데 5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흉내가 아닌 그런 상태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요즘 들어 목수일을 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유목민처럼 양봉으로 전국을 떠돈 아버지를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10년의 여정 길을 따라가 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고 싶어서다. 제주의 계곡에서 발견한 돌에서 아버지를 보기도 했다.

“저의 내면의 길을 찾아 나서다 보면 분명 거기에 나의 조각의 답이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실이 위치한 경기도 양평의 마을에선 그는 만능 목수로 통한다. 도낏자루도 만들어 주고 낫도 갈아준다. 부서진 농기계도 용접으로 수리를 해준다. 온돌 구들은 물론 실내 난로까지 만들어 주기도 한다. 섬기는 삶이다. 삶에 진정 다가서기 위한 방편이다. 소박 순진하며 질박하고 격이 없는 그의 인물상들의 DNA가 바로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다. 삶의 다양한 참모습들을 시간의 질감으로 건져 올리고 있는 그의 조각은 오랜 세월 조탁해 낸 듯 깊이감과 더불어 친숙한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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