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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난중일기 속의 인간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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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26 21:52:20 수정 : 2016-01-26 21: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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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 어머니 생각하며 밤새 잠 못이뤄
주정 심한 원균에 서운한 감정도 담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결심이 있다. 매일의 일기를 기록해 삶을 정리하고 반성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해가 되면 각종 다이어리가 많이 팔려 나간다. 요즈음에는 그 정도가 덜하지만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담임선생님이 일기 쓰기를 독려하고 늘 일기장 검사를 했다. 방학 숙제 중 일기가 꼭 포함돼 있어 마지막에 밀린 일기의 날씨 때문에 고민했던 기억도 선하다.

일기 쓰기의 전통에 관한 한 우리 민족은 결코 뒤지지 않는 유전자를 지닌 듯하다. 편년체로 왕실의 주요 사건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왕의 비서실 일기인 ‘승정원일기’,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일기에서 시작해 국정의 최고 기록이 된 ‘일성록’은 이미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이순신 장군이 쓴 진중일기인 ‘난중일기’ 또한 2013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난중일기’는 정조 때인 1795년 이순신 장군의 전집인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연도별로 전해지던 이순신 장군의 일기를 모아서 ‘난중일기’라고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장군 이순신의 면모와 더불어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어머니 변씨에 대한 그리움은 일기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1593년 5월 4일에는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지만 적을 토벌하는 것 때문에, 가서 장수를 축하하는 술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다”라고 했으며, 1595년 1월 1일에는 “팔순의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1597년 4월 13일 이순신은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뛰며 뒹구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안으로 들어가니 배가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통렬한 마음을 다 적을 수 없다” 면서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아침에 옷이 없는 군사 17명에게 옷을 지급했다. 또 여벌로 한 벌씩을 주었다. 종일토록 바람이 험했다”는 1596년 1월 23일의 기록에서는 따뜻한 지휘관의 모습이 엿보인다. 원균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드러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영남수사 원균이 왔는데 술주정이 심하기가 말할 수 없다. 배를 탄 장군과 병사들이 놀라고 분노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1593년 5월 14일의 기록이 대표적이다. 일기의 마지막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 “왜의 중간 배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로부터 바다를 건너는 때에 한산도 앞 넓은 바다까지 추격했다. 왜적은 해안을 의지해 육지를 타고 달아났다”는 기록으로 끝까지 왜선을 추격하는 모습을 일기에 담고 있다.

‘난중일기’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우리 민족은 일기에 관한 한 세계적 수준의 기록정신을 보유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인터넷의 유행 등으로 일기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2016년 올해에는 손 글씨로 자신의 하루하루를 정리해 볼 것을 권한다. 1년, 10년, 20년의 기록을 모아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경험은 우리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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