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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업 부담" 명분 내세워 과징금 삭감… 혈세 줄줄 새나가

입력 : 2016-01-24 18:13:29 수정 : 2016-01-24 19: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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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관급공사 <1회> '솜방망이' 제재
흔히 관급공사는 ‘혈세 먹는 하마’, ‘밑빠진 독’이라 불린다. 수십년째 복잡한 먹이사슬이 얽히고설키면서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16개 분야 총 240조원을 운용하는 공공시스템에 부정부패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4대 백신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관급공사에 만연한 담합과 비리가 청산될지 주목된다. 세계일보는 관급공사의 발주와 입찰, 감시체계에서 벌어지는 문제점과 해법을 4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관급공사(공공건설사업) 담합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등 제재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진은 입찰담합 과징금을 받은 관급공사 중 하나인 ‘4대강 공사’ 중 낙동강 달성보 공사 현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근혜정부는 집권 2년차인 2014년 건설업계로부터 ‘과징금 폭탄’이라는 원성을 살 정도로 관급공사 담합 적발에 열을 올렸다. 건설업계 담합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3478억9800만원) 기록을 남긴 ‘호남고속철도 제2-1공구 노반신설 기타공사 등 13개 공구 최저가낙찰제 공사’ 의결이 2014년 9월에 이뤄졌다. 앞서 2월과 4월에는 과징금 규모가 컸던 인천도시철도 2호선 턴키공사 입찰과 대구도시철도 3호선 턴키대안공사 등도 의결됐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심화하고 건설 경기가 악화하자 상황은 돌변했다. 지난해 관급공사 입찰담합으로 적발된 기업들에 대한 과징금 액수와 매출액 대비 과징금 비율, 검찰 고발 건수 등이 모두 급감했다. 경제살리기 명분에 밀려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는 증거라 할 만하다. 그 사이 관급공사 담합과 비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혈세가 줄줄 새나가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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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지는 공정위 칼날

공정위는 지난해 “기업 부담을 줄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건처리절차 개혁방안 3.0’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공정위는 입찰담합에 서류만 내고 들러리를 서준 업체에 부과되는 과징금을 깎아주기로 관련 고시도 개정했다.

지난해 7월 공정위가 의결한 48억원대 인천지방조달청 발주 해양경비안전망 구축사업은 담합이 드러났으나 과징금을 맞은 업체가 한 곳도 없었다. 낙찰받은 업체는 리니언시(자진신고감면제도)를 활용해 피했고, 공모기업은 중소기업인 데다 들러리로서 피하기 어려운 정황 등이 감안됐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2010년부터 5년간 담합에 적발되고도 기업회생 절차 등을 사유로 과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기업이 43개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지 않은 환경시설 공사와 같은 관급공사에서 적발된 담합사건의 매출액 대비 과징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2014년에 의결한 대구 서부하수처리장 외 1개소 총인처리시설 설치공사와 공촌하수처리시설 증설 및 고도처리시설공사는 나란히 5.6%였다. 환경시설은 국민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라는 점이 감안됐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이에 반해 한국가스공사 발주 천연가스 주배관 및 관리소 건설공사와 같은 덩치 큰 사업은 과징금 비율이 0.76%였고, 경인운하사업 제4공구 시설공사도 0.73%에 불과했다.

불법행위에 대한 과징금 비율이 미미해 처벌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적발건수가 증가해 과징금 총액은 늘어났으나 매출액 대비 과징금 비율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징금 산정 구멍, 혈세는 줄줄

공정위의 과징금 조정 과정도 자주 도마에 오른다. 공정위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2011∼2014년 과징금 산정 단계별 금액’ 자료에 따르면 2014년에 산정기준으로 책정된 과징금 총액은 2조5680억원에 달했다. 이 금액은 1차 조정에서 1.5% 증가해 2조6073억원으로 늘어으나, 2차 조정을 거치면서 15.5%가 감면돼 다시 2조2032억원이 됐다. 그러다 최종 조정작업을 거쳐 산정기준 금액에서 54.8%가 줄어든 1조1608억원으로 정리됐다.

공정위의 과징금 기본산정 총액을 100이라고 할 때 각종 감경사유로 46이 깎이고, 최종 부과되는 과징금은 54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최종조정률로 불리는 이 비율이 2011년에는 43.8%, 2012년에는 49.8%, 2013년에는 60.4%였다. 공정위가 애써 적발한 담합사범의 과징금을 대폭 깎아 주는 것은 과징금 고시 자체가 기업에 유리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는 이에 “과징금의 과도한 감면과 관련해 과징금 부과규정이 공정거래법 시행령 등에 포괄적으로 위임돼 있어 공정위에서 멋대로 해석할 수 있으니 개선방안을 강구하라”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처벌기준에 따른 피해보다 입찰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더 많아 결국 담합에 속수무책이라는 분석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해 공공건설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들의 담합행위에 대한 과징금이 턱없이 낮은 탓에 2014년에만 약 1조8000억원의 국가예산이 낭비됐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당시 과도한 과징금으로 건설업의 생존이 흔들리고 있다는 정부·업계 주장과 달리 2014년 적발된 공공건설 입찰담합 사건의 과징금은 예산낭비액 1조800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8438억원에 불과했다”며 “이는 매출액 50조5000억원의 1.6%에 불과해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이천종·안용성·이현미·이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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