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흐드러진 봄날의 하얀 기억
흰 눈밭 홀로 선 작가의 삶처럼
예버덩 닿는 길도 답을 찾는 여정
강원도 주천강변에 자리 잡은 예버덩문학의집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이곳은 주천강이 빠른 물살의 호흡을 가다듬기라도 하듯이 U자형으로 휘돌아 흐르는 지점에 자리 잡은 작가들의 창작 집필실이다. 왼쪽 언덕에는 잣나무숲이 있고 그 숲 속에는 세 개의 큐브형 작업실이 있다. 가운데에는 하얀 본채 건물이 있는데 거기에 두 개의 집필 공간과 도서관, 그리고 주방 겸 거실이 있다. 그리고 건물 오른쪽에는 키가 큰 가문비나무 숲이 있어서 봄가을이면 입체 낭독회와 초청 강연회가 열린다.
건물의 앞쪽에는 넓고 둥근 노을 버덩이라는 마당이 있는데, 거기서 노을을 보면 건너편의 ‘선계마을’이라는 이름에 끄덕이게 된다. 최근 이 노을 버덩에 새 가족이 생겼다. 예버덩의 새 지킴이인 파랑새 조형물인데, 이 새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신경림 시인의 납작한 시돌(詩碑)이다. 예버덩문학의집의 10주년과 맞물려 지난달 22일은 이곳의 고문이었던 신경림 시인의 1주기였다. 그래서 시인의 대표시 ‘갈대’를 육필로 새긴 것이다. 청동판에 파란 글씨로 흘리듯이 새겨 붙인 이 납작한 돌은 원래 작가들이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거나 명상에 잠기던 돌이어서 의미가 더 깊다.

개관식이 있던 날 직접 축사를 했던 그 자리에 시인의 시돌이 놓인 것이다. 건물의 설계가 시작될 때부터 시인은 이곳에 애정을 가졌고, 지금은 마치 예버덩의 선친(先親)처럼, 시인 특유의 온기로 보듬고 또 격려하고 있다. 참 신기하게도 이 시돌 옆에는 산돌배나무가 향로 모양으로 서 있다. 봄에 이 산돌배나무에 하얀 배꽃이 피면 어느 하루 시인과 함께 배꽃나무 사이를 걷던 날이 떠오를 것 같다.
배꽃이 흐드러진 봄날이었다. 후배 김성규, 김안녕, 김수현 시인과 선생님 곁을 까불며 별내동의 한 수도원 인근의 배밭을 거닐었다. 하얀 배꽃과 선생님의 하얀 잠바, 그리고 희끗한 머리카락이 무슨 희디흰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아, 고요한 선생님 곁에서 우리는 자꾸 귀를 기울였다. 한 번도 재촉해 본 적 없는 듯이 느긋한 걸음 곁을 천천히 걸으며, 그 걸음으로 삶을 디뎌야 한다는 각자의 다짐 비슷한 것도 해본 날이었다. 그날도 그랬지만 배꽃은 그 이후에도 현실의 꽃이 아닌 것이 되었다.
노을 버덩에 산돌배꽃이 피었다가 사라진 봄도 떠났고, 하얀 개망초가 한창인 들판 너머로 지금은 주천강 물소리가 힘차게 6월의 여름을 열고 있다. 가을이면 입구부터 본채까지 하얀 구절초가 길을 만드는 이곳의 빛깔은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초록이 지배하지만, 사계절을 생각해 보면 예버덩의 색깔은 백지에 가깝다. 작가들이 늘 마주하는 컴퓨터 화면의 공간도 그렇거니와 예버덩의 겨울은 그야말로 하얀 눈의 세상이다. 눈 얘기를 시작하면 여기서 촬영한 영화 얘기를 빠뜨릴 수 없다.
김전한 감독은 ‘시인들의 창’이라는 문학예술 다큐영화를 2년에 걸쳐 이곳에서 촬영했다. 이 영화에서는 한 작가가 들판에서 눈바람과 맞서는 장면이 단연 압권이다. 15분 정도의 롱테이크 장면인데 들판의 커다란 정자나무를 배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비닐하우스의 뜯긴 조각들이 공중을 휘감는데 그 바람을 견디며 한 작가가 서 있다. 바람에 한없이 떠밀리다가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투혼은 작가의 글쓰기와도 닮아 있다. 그리고 이 예버덩을 사비로 짓고 또 묵묵히 지켜가고 있는 이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실제 영화 속 인물도 예버덩의 대표인 조명 시인이다.)
최근에 예버덩 근처에 새 교량이 놓였다. 접근 거리가 더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나 옛길이 더 정겹다. 옛길은 살아 굼실대는 강물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햇살이 물결에 조각나는 모습도 가깝다. 마을을 둘러친 산의 너그러운 포옹과 밭들 사이의 오밀조밀한 다정함도 느낄 수 있다. 마치 시돌에 앉아 있는 파랑새가 마중이라도 나올 것 같이 인정스러운 길이다. 그러나 예버덩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 입구를 잘 보여주지 않는 좁고 구불텅한 길이다. 백지를 걷는 작가의 삶도 이 길과 비슷하니 더욱 제격인 길 아닌가.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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