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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섣부른 해결보다 갈등 있는 그대로 드러냈죠”

입력 : 2015-10-25 20:43:29 수정 : 2015-10-25 20: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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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연극인 손잡고 만든 ‘태풍기담’ “한국과 일본 연극인이 역사를 다루면서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한 사례는 없었다고 봐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요.”(일본 연출가 다다 준노스케)

한국 연출가 성기웅(41)과 일본 연출가 다다(39)의 대화를 듣다보면 ‘단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극단 ‘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 성기웅과 일본 극단 ‘도쿄데쓰락’의 다다는 2008년 처음 만났다. 몇 년간 서로 작업을 돕다가 2년 전 함께 연극 ‘가모메’를 만들었다. 체홉의 ‘갈매기’를 1930년대 평안도로 옮긴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벌어진 일을 일본인이 연출한다니 눈길이 쏠렸다. 민감한 시기를 다뤘던 이들이 이번에 또 1920년대가 배경인 ‘태풍기담’을 내놓았다. 2년 전처럼 성기웅이 극본을 쓰고 다다가 연출했다.

연극 ‘태풍기담’의 연출과 극본을 나눠 맡은 일본의 다다 준노스케(왼쪽)와 한국의 성기웅은 “2년 전 체홉의 갈매기를 ‘가모메’로 만든 적이 있어서 이번에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일제강점기로 옮겨서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로 바꿀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최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함께 작업하는 건 아니다”라며 “역사를 소재로 하지만, 역사에 기여하기 위한 게 아니라 현재를 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바다를 건너 손잡은 건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성기웅은 “다다는 연출가로서 발상이 기상천외하다”고 운을 뗐다.

“다다는 참신하고 동시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어서 배우는 점이 많아요. 제 희곡 이상으로 작품을 연출해내니 저로서는 행운이죠. 같은 연출가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천재적인 구석이 있어요.”

“하하하하” 웃으며 듣던 다다는 “저는 희곡을 못 써서 희곡 쓰는 사람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일 양국을 통틀어서 이런 희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성기웅밖에 없다”며 엄지를 세웠다. ‘태풍기담’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원작이다. ‘템페스트’에서 나라를 빼앗긴 프로스페로를 조선의 황제 이태황으로 바꿨다. 그는 복수를 꿈꾸며 남중국해 외딴섬에 은거 중이다. 이 섬에 철천지 원수인 일본 귀족이 표류한다.

성기웅은 “프로스페로는 적을 용서하고 화해하지만 한·일 관계는 섣불리 화해를 말하기 복잡하다”며 “양국의 불행한 역사와 쉽게 화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결말로 바꿨다”고 말했다. 다다는 “이 연극에는 사람과 사람, 국가와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 지배·피지배 관계가 나온다”며 “작품을 보고 국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태풍기담’에서는 ‘가모메’처럼 한·일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연기한다. 한국에서는 정동환, 박상종, 전수지, 일본에서는 오다 유타카, 나가이 히데키 등이 나온다. 다다는 “(경력이 한참 위여도) 모든 연습에 적극적이고 즐겁게 참여한 정동환 선생이 인상에 남는다”며 “일본 배우들이 정 선생과 너무 친밀해져서 결례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서로 친해졌다”고 했다.

흔히 한국 배우는 감정을 발산하고 일본 배우는 감정을 숨기는 연기를 한다고 말한다. 성기웅은 “한국 연극에서 감정을 중시하다보니 감정과잉이 되는 경우를 경계한다”며 “배우는 관객에게 감정을 전염시키기보다 어디까지나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존재”라고 밝혔다. 다다는 “저는 오히려 한국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본과 다른 신선함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출할 때 한국 배우의 연기는 정말 훌륭해요. 다만 모든 장면에서 감정을 표출하려 해서, 어디에서 눌러줘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죠.”(다다)

“잘하는 배우일수록 굉장히 이성적으로 계산하고 통제하며 연기해요. 이번에 함께 하는 정동환, 박상종, 오다 유타카 모두 감정이 풍부하지만 동시에 이성적으로 연기한다는 걸 확인했어요.”(성기웅)

‘태풍기담’은 남산예술센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일본 후지미시민문화회관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했다. 다다는 “일본의 혐한 분위기가 심각하고 정치적 갈등이 많지만 문화 교류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며 “이렇게 같이 작업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모메’ 일본 공연 때 실감했어요.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사람의 관심은 유럽과 미국으로 향해 있어요. 식민지배 역사는 잘 몰라요. ‘가모메’를 보고 미처 알지 못한 역사를 마주하게 됐다는 후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 연극을 일본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생각됩니다.”(성기웅)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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