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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정동구락부’서 시작된 카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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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6 20:55:26 수정 : 2014-09-26 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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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애호가 고종 신임 얻어 문열어
대중화 비해 개방형 소통기능 아직
최근 몇 년 동안 대형 상점을 중심으로 전문 커피숍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중소도시는 물론이고 한적한 산천에까지 그 열기가 대단하다.

한국에서 커피가 소비되기 시작한 역사 기록은 고종의 아관파천이 유력하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거칠어지는 친일 세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약 1년간(1896년 2월 11일∼ 1897년 2월 25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소개로 커피를 접하게 되면서 커피 애호가가 됐다고 한다. 고종의 신임을 얻던 독일계 러시아 여인 손탁이 호텔을 세우고,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정동구락부’를 만들었으니 우리에게 커피의 유래와 카페문화의 역사는 함께 시작된 셈이다.

우성주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커피가 인류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서기 700년 무렵이다. 하지만 커피 음용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료는 아랍 철학자이며, 의사였던 아비세나의 1000년쯤 기록으로 추정된다. 이후 아랍 신비주의자인 수피들은 카페인을 섭취해 수마(睡魔)를 쫓고 신에 대한 명상에 몰입할 수 있도록 커피를 음용했으나, 율법학자들은 카페인의 중독성이 신앙생활의 장애라며 반대하기도 했다. 16세기 후반 베네치아 상인들이 커피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의 음료’는 ‘기독교의 음료’로 확장됐고, 17∼18세기 커피 음용을 위한 공공장소인 ‘카페’는 ‘살롱’과 더불어 유럽 대도시 부르주아의 ‘민중적(반특권적) 장소’가 됐다. 19세기 산업혁명을 계기로 노동자를 위한 각성 음료로서의 기능이 추가됐고, 20세기 공장체제 혁명이 일반화되면서 커피는 일반대중을 위한 효율적 각성 음료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아랍과 서구에 비해 늦게 커피를 접하게 됐던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문인과 예술인 중심의 다방을 경험하게 됐다. 산업화와 함께 신흥 경제활동 인구 중심의 다방이 성행했고, 1970년대에는 일시적으로 퇴폐적이고 은밀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중년 소비층에게 다방은 말벗의 역할을 했던 마담과 레지가 상주하던 독특한 남성 중심의 문화 공간이었지만, 대학가의 다방은 문화적 취향과 유행을 적극 반영하는 음악의 공간, 밀회의 공간, 스터디나 토론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띠었다. 1980년대는 믹스커피 소비와 다방의 변신의 시기였다. 마담과 레지가 근무하는 다방과 젊은이들의 전문 음악다방이 공존하는 모습은 1990년대 유리창을 통해 외부와 소통되는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커피 소비 공간은 다양한 계층을 향해 열린 공간으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커피 브랜드 기업의 연간 매출액은 상위 3개 기업만 합쳐도 6000억원을 상회할 정도로 막강한 경제영역이 됐으며, 대표적 토종브랜드 매장은 전국에 900개를 넘나들 정도이다. 오늘날의 커피 소비 공간은 ‘다방커피’ 대신 ‘아메리카노’를 대표주자로 내세우는 서구식 카페와 더불어 정착하게 되면서 우리의 미각은 물론 문화 소비 공간의 의미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다방에서 커피숍으로 다시 카페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특징은 소비 계층의 구분이 적어졌다는 점이며, 생산주체들만의 배타적 소비 공간이었던 커피숍은 세대 간 문화 공유 공간으로 변화되고 있다. 남녀노소의 구분에서 보다 자유로운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카페가 여러 세대를 향한 공간으로서 보편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세대와 집단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공간이 형성돼 있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낯선 커피 메뉴와 취향에 스스로를 맞추어야 한다거나, 카페 소비문화가 여전히 청년층 중심으로 형성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다양한 세대들이 친근하게 접근해 쉽게 향유할 수 있는 개방형 소통공간으로서 커피숍의 다양한 문화적 기능은 여전히 부족하다. 커피 문화 공간은 경제 전략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적 주체로서 소비자의 필요성을 위한 의미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우성주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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