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에서 최민식의 연기는 그만큼 강렬했고, 뜨거웠다.
1597년 정유재란 시기에 일어난 명량대첩을 다룬 단 하나의 영화 ‘명량’이 지난 30일 개봉했다. 그 어느 때보다 대전(大戰)을 방불케 하는 여름 극장가 대작 경쟁, 그 중심에 서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영웅으로 추앙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역할. 연기력이라면 충무로에서 단연 손꼽히는 최민식이라지만, 이순신이라는 배역명에 기가 죽고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연기인생 25년 동안 처음 느껴봤다는 거대한 부담감. 영웅에서 ‘땅을 밟고 있는 인간’으로서, 그가 실제 어떤 말투, 행동, 마음가짐으로 살았는지, 실체를 아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부담감은 최민식 스스로를 끊임없이 옥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이순신 장군의 무거운 갑옷과 칼을 받아들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단다.
‘그래, 이런 영화도 있어야지.’
“영화를 보고 한 번이라도 가슴 뜨듯해지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한국인의 피.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 사람들 스토리는 지금 우리와는 동떨어진, 어쩌면 신화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죠. 누구나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서 접해온 성웅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지만, 실제 그에 대해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대부분의 관객들이 아마 그랬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건 우리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와는 먼 이야기인데도 화가 나고 울컥하죠. 그 동질성이 짠한 거예요.”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통해 ‘연기파’, ‘베테랑’이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살았지만, 이번 작품에서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입에서 “(촬영에) 확신이 안 섰다” “(연기가) 개운치 않았다”는 등의 표현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명량’이 완성되고 나서 처음 본 기술시사회(내부 시사)에서 차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서 봤다는 에피소드는 이미 유명하다.
“긴장이 많이 됐긴 했나 봐요. 언론시사회 이틀 전에 한 기술 시사 때 처음 봤는데, 못 앉아 있겠더라고. 아직까지도 이 영화를 객관적이고 편안한 맘으로 볼 수 있는 여유는 없어요. 그저 다만, 블루매트 깐 채 바다를 상상하며 찍어 놓고 CG가 이렇게 나왔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죠. 저 개인적으로 색다른 경험이었고, 저걸 어떻게 찍었나 싶기도 하고.(웃음)”
한국영화의 놀라운 발전을 이번 영화를 통해 실감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 아이와 같은 순수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내내 오직 이순신 장군과 인간 최민식 사이에서 심하게 갈팡질팡하며 강박증까지 생겼다는 그는 연기 인생에 있어 최대 위기였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최민식은 그동안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 2010)에서의 사이코패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 2012)의 부패 공무원 등 주로 악마적인 캐릭터에서 두각을 보여 온 게 사실. 그런 그가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와 의구심을 표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원래 없어요. ‘악마를 보았다’든, ‘명량’이든 작품에 따라 배우는 변하게 돼 있죠. 각기 다른 프레임에 들이부으면 그 틀대로 만들어지는 게 배우거든. 후배들한테도 늘 말해요. 배우는 액체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항상 유연해야 하는 존재, 작품에 자신의 개성이 새 나가면 안 돼요. 언제든지 작품에 따라 세모도, 네모도, 때로는 별 모양도 될 줄 알아야 해요. 물론 역할을 맡을 때마다 리스크(위험성)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신경 써요. 이번엔 조금 그게 더 심했지만.(웃음)”
마지막으로 ‘명량’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주문에 그는 “극복”이라는 짤막한 대답과 함께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장군님 삶 자체가 ‘극복’이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는 ‘극복의 과정’을 담고 있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명량’의 최대 관람포인트예요.”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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