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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맞은 출판사 편찬팀 없애… 도서관도 구입 외면

관련이슈 국어死전…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입력 : 2014-06-30 06:00:00 수정 : 2014-07-01 1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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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死전 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대부분 수십년째 수정 안해
서울 320개 공공도서관 중 2013년 사전구입 십여곳 뿐
“최소 시장마저 보장안돼 막막”
교보문고 등 시내 대형서점 사전 코너엔 크고 작은 여러 국어사전이 빼곡히 꽂혀 있다. 겉보기에는 최신이지만 사전 표지 뒷면에 붙어 있는 책의 신분증명서 ‘판권지’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어사전 대다수가 외양과 달리 헌책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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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새국어사전/2003년 8월 5판 개정(1989년 1월 초판)’. 1989년 처음 나온 후 2003년 8월의 다섯 번째 개정이 마지막 수정이라는 뜻이다. ‘교학사 한국어사전/2004년 1월 초판’. 2004년 처음 나온 그대로라는 뜻이다. ‘교학사 뉴에이지 새국어사전(사진)/1989년 2월 초판’. 나온 지 무려 26년째 그대로인 사전이다. ‘금성 콘사이스 국어사전/2005년 1월 3판’, ‘YBM 엘리트 국어사전/2006년 1월 초판’, ‘민중서림 엣센스 국어사전/2006년 1월 5판 개정(1974년 11월 초판 출간)’ 등 다른 사전도 엇비슷하다.

사전들이 10여년 전 출간되거나 ‘증보(새로운 내용을 더 보태고 모자란 것을 채워 다시 출판)’된 후 별다른 보완 없이 ‘증쇄(고침 없이 재인쇄)’만 되풀이된 것이다. 주요 출판사는 아예 사전 편찬팀은 없애면서도 사전 영업팀은 계속 남겨뒀다. 사전 수집가인 경기대 국문학과 박형익 교수는 “국어사전이 잘 안 팔리고 위기라고 하지만 판권지를 살펴보면 끊임없이 증쇄되고 있다”며 “출판사가 사전 개정작업 없이 예전 만든 그대로 찍어서 계속 팔고만 있는 것”이라고 출판사의 양심불량을 지적했다.

출판사들은 자기네 국어사전 판매량 공개를 꺼린다. 그나마, 베스트셀러가 주요 대형 서점에서 한 해 200∼500권 정도가 팔리는 것으로 세계일보 취재 결과 파악됐다. A서점 관계자는 “국어사전 판매의 90%는 초등학생용 학습사전”이라며 “일반 국어사전 판매는 미미하다”고 말했다.

한국사전학회장인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정영국 교수는 “사전이 잘 팔리고 성황일 때 출판사들이 얼마나 책임감 갖고 좋은 사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며 “개별 사전 사용자 층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사전을 만드는 다품종 소량 판매 전략을 세우는 출판사가 있으면 아직도 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말했다.

국어사전의 쇠멸은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실적에서도 뚜렷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관법 20조 ‘납본’ 규정에 의해 국내에서 출판된 모든 새 서적(증보판 포함)을 납본받는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세계일보에 정보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어사전 납본 실적은 1980년대 초반 한 해 서너권에서 89년 8권, 90년 9권 등으로 늘어났다. 국어사전 출간 전성기는 93, 94년도였다. 두 해 동안 무려 34권의 국어사전이 납본됐다. 하지만 이 후 국립중앙도서관에 출생신고하는 국어사전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다. 2000년대 매년 5∼9권이 나오다가 2011년 2권, 2012년 1권(동천사 순우리말사전), 2013년 1권(고급 한국어 학습사전)으로 뚝 떨어졌다.

최근 공들여 권위 있는 한일사전을 출판했으나 판매 저조에 실망한 경험이 있는 B출판사 대표는 “전국 주요 도서관이 새로 나온 사전을 한 권씩 사준다면 그나마 최소 시장이 보장될 터인데 ‘비싼 사전 들여놓는 것은 장서 숫자 늘리기에 보탬이 안 된다’며 잘 사들이지를 않더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내 320개 공공도서관을 취재한 결과 지난해 오랜만에 출간된 국어사전인 ‘고급한국어학습사전’을 보유한 곳은 12곳에 불과했다. 납본 기관인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빼면 새 국어사전을 산 도서관은 단 10곳이다.

특별기획취재팀=글/박성준·김수미·오현태, 편집/문효심, 사진/이제원·남정탁, 그래픽/김시은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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