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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엄청난 발견의 연속… 떠돌다보니 이제야 보여 ”

입력 : 2014-06-10 21:04:58 수정 : 2014-06-10 23: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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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11년 만에 소설집 ‘천사는 여기 머문다’ 출간
전경린(52)씨가 네 번째 소설집 ‘천사는 여기 머문다’(문학동네)를 펴냈다. 단편을 묶은 창작집으로는 11년 만이다. 주로 장편에 매달렸던 사실을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이 소설집에 같이 묶여 있다. 그는 마산에서 성장해 대학을 나온 뒤 그곳에서 결혼해 살다가 40대에 ‘염소를 몰고’ 탈향을 감행, 서울과 파주까지 가서 살다가 2010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남쪽 끝에서 북쪽 끝 접경지역까지 가서 살아본 셈이죠. 친구가 그러더군요, 분단이 안 됐으면 신의주까지 갔을 거라고. 공간에 대한 끌림이 강한 것 같아요.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많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집을 묶어낸 전경린씨. 그는 “나에게 슬픔은 만물의 순환과 같이 생명의 조건이며 존재들이 복역해야 할 독특한 의무”라고 썼다.
전경린은 공간이건 사람이건 끝까지 가서 부딪쳐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로 보인다. 그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 점집에 갔는데 그곳 노파가 정작 친구는 제쳐두고 문간에 멀찌감치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던진 말이 재미있었다”고 전했다. 그 노파는 “이 사람, 그렇게 먼 데를 갔다온 줄을 누가 알겠느냐”면서 “이젠 안 가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이 말에 그가 흥미롭게 반응한 것은 비단 공간뿐 아니라 마음도 모질게 떠돌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명의 탈피(脫皮)를 느껴요. 생명은 스스로 쇄신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힘을 내장하고 있어요.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느끼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나는 선명하게 느끼는 편입니다. 산다는 것은 소문과는 전혀 다른 것이더군요. 자기 자신만이 부닥쳐서 느낄 수 있는 게 존재합니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엄청난 발견의 연속인 셈이지요.”

전경린의 말을 듣고 보니 “살아간다는 일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관용이 생겼지만, 동시에 반쯤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기라도 하는 듯 조금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라면서 “사라진 나와 새로워진 나 사이에서, 미제 사건의 알리바이처럼 이 책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작가의 말’에 썼던 대목이 이해가 간다. 이번 소설집에는 그 ‘생의 알리바이’를 증거하는 단편 9개가 실려 있다.

2007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마와 천사라는 본성의 양면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와 함께 이상문학상을 안겨준 ‘천사는 여기 머문다2’에서 그는 이별의 쓸쓸함을 이런 대사에 담았다.

‘끝났기 때문에 헤어진 거예요. 할 만큼 했죠. 그걸 몰라요? 쌀독의 쌀이 비듯, 우물의 물이 마르듯, 산 하나가 불탄 듯, 텅 비어버렸기 때문에 헤어진 거라구요.’

그렇게 텅 빌 정도로 끝까지 간 뒤 다시 생의 기운을 새롭게 축적하는 그네의 알리바이는 ‘천사는 여기 머문다 1’의 이 대사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불행은 결코 생애 전체 속에서 무용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예요. 불행 속엔 날개가 있어요. 난 성공 속에서보다 불행 속에서, 천사처럼 날아보았거든요.’

전경린은 “생명 자체의 아름다움과 능력을 믿는다”면서 “누구에게나 자신을 보살피는 ‘천사의 팔’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닥쳤던 힘든 시간들을 극복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종교가 없는 그네가 방점을 찍는 ‘천사’란 강인한 생명만이 지니는 자정 능력 같다. 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강변마을’은 인도에 여행 갔다가 뜨거운 모래밭을 걸었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실제 있었던 일 또한 시간이 지나면 언어의 기록만 남는 허구로 변하지요. 허구와 실제 사이의 경계는 없어요. 진짜 경험의 조각 없이 마구 상상으로만 채워내는 글을 싫어해요.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삶 앞에 마주서는 태도가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들 작품 외에도 최근작인 ‘맥도날드 멜랑콜리아’를 비롯해 ‘야상록’ ‘밤의 서쪽 항구’ ‘흰 깃털 하나 떠도네’ ‘여름 휴가’ ‘백합의 벼랑길’ 등이 수록됐다.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체의 결에 젖어들고 싶은 이들에게 특히 권할 만한 창작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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