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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만이 살 길” 옛말?… “내수도 중요” 고개

입력 : 2014-05-25 19:56:55 수정 : 2014-05-26 0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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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고 있는 환율 인식
환율에 관한 한국 경제계의 시선은 ‘편파적’이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이 타격받을까봐 걱정이 쏟아진다. 나라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환율 하락이 수출에 끼칠 악영향은 과장하고, 내수에 미칠 ‘좋은 영향’은 무시하는 시선이 오랜 시간 굳어진 결과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가난했던 시대의 인식이 관성화한 것이다.

관성적 인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원화 강세, 즉 환율 하락의 긍정적 효과에도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들은 물론 정부나 한국은행 고위관계자 발언에서 인식의 변화가 읽힌다. 수출산업 관점에 치우쳤던 환율 변동의 효과를 내수산업 관점에서도 바라보기 시작했다.

◆환율 인식, 달라지고 있다

“내수 쪽에서 보면 실질 구매력이 높아져 부진한 내수를 살리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9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환율 하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해 달러당 1020원대 초반으로 추락하면서 수출산업에 대한 걱정이 쏟아지던 때였다. 이 총재의 발언은 “환율 변동의 영향엔 양면성이 있는 만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건 관성일 뿐”이라고 말했다. 거시경제 정책의 양축인 재정과 통화 정책 수장의 이런 발언은 환율에 관한 인식과 정책의 변화를 말해준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엔 침체된 내수를 살리지 않고는 경제성장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은 “과거 수출이 효자노릇을 한 것은 맞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갈 거냐”며 “내수가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출이 아무리 잘돼도 수출기업에만 돈이 쌓일 뿐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데 따른 인식의 변화이다.

대기업을 필두로 한 수출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국민경제 전체로 잘 파급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엔 수출 위주의 불균형 성장이 양극화를 부추기고 내수 기반을 허물어 경제성장을 오히려 가로막는다. 한은 관계자는 “낙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수출이 잘되면 모두 잘살게 된다. 조금만 참아라’라는 얘기가 더 이상 안 통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율 하락이 수출에 끼치는 영향력도 현저히 줄었다는 게 중론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비가격경쟁력 강화 등으로 수출 주력품목에 대한 단기 환율 변동의 영향은 이제 별로 없다”고 분석했다. 

환율 하락의 추세로 수출 부진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기 회복에는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서울시내 한 백화점의 가방 매장이 본격적인 여행철을 앞두고 쇼핑객들로 붐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원화 강세, 내수회복의 기회

원화 강세, 즉 환율 하락은 한국경제의 양호한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당연한 흐름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들의 증권투자자금 유입으로 시장에 외환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승호 실장은 “외환의 초과 공급으로 원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말했다. 수출이 너무 잘돼 외환이 넘쳐나면서 환율이 떨어진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환율 하락으로 수출이 어려워질 거라고 걱정하는 건 모순인 셈이다.

환율 하락은 추세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외환당국이 환율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게 시장에 개입할 필요는 있지만 하락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안동현 교수, 이승호 실장은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기조적 균형환율을 달러당 900원대 중후반으로 추정했다. 안동현 교수는 “외환당국이 하락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겠다고 어설프게 나서면 환투기 세력에게 기회만 제공할 것”이라며 신중한 시장 개입을 강조했다.

연장선에서 환율 하락 흐름을 수용해 이를 내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이승호 실장은 “환율 하락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비와 투자 등 내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라며 “선진국치고 내수 기반 없이 수출에만 목매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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