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침몰 당시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이 탈출해야 할 시점을 정확히 알고 대응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울어진 지난달 16일 오전 8시52분 각자의 선실에 있던 선원들이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조타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1등 항해사 강원식씨는 세월호의 복원성이 좋지 않아 침몰할 것을 인식하고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요청을 했다.
구조요청 후 경비정과 어선들이 접근하자 일부 선원들은 탈출하기 용이한 기관실 쪽으로 이동했다. 선원들은 퇴선 시점을 침수한계선에 물이 차오를 때로 잡았다. 배가 침수한계선까지 기울게 되면 선내로 물이 곧바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호는 2층의 D데크가 침수한계선이다. 이것은 선원들만 아는 비밀이다. 침수한계선이 물에 잠기면 밖으로 열게 돼 있는 문을 열 수 없게 된다. 세월호의 침수한계선이 수면에 잠긴 시각은 오전 9시34분이다. 이 시각에 맞춰 기관실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대기하라는 방송만 내보낸 채 자신들만 빠져나왔다.
세월호의 침수한계선이 잠길 때까지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다. 승객들에게 침몰을 숨긴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이준석 선장은 침몰 사실을 알고 난 지 6분 만에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지시했다. 2등 항해사 김영호씨는 세월호 사무장 양모씨에게 무전기로 안내방송을 전달했다. 하지만 2등 항해사는 사무장에게 세월호 침몰 사고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양 사무장의 지시를 받은 안내데스크 매니저 강모씨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여러 차례에 걸쳐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승객들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준석 선장은 “내가 살기 위해 배를 먼저 빠져나왔다”고 말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또 승무원들은 구조된 후에 선원이라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제복을 갈아입거나 사고 후에도 구조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진도 VTS에서 현재 승객들의 구조상황을 수차례 물었지만 승무원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경비 구조선에 몸을 실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본부는 선원들이 해경 경비정만 침몰 현장에 도착한 상황에서 승객들이 한꺼번에 퇴선할 경우 구조 의무가 있는 자신들은 뒷순위로 밀릴 것을 우려해 승객 대피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수사본부의 수사 결과 세월호는 2012년 일본에서 구입해 증·개축한 후 좌우 불균형이 발생하는 등 복원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시 평형수 가운데 1308t을 감축하고 대신 화물량은 기준량의 2배인 2142t을 적재해 복원력을 떨어뜨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선원들에 대한 기소를 마무리한 수사본부의 향후 수사 초점은 해경의 부실대응으로 맞춰지고 있다. 검찰과 해경으로 구성된 검경합동수사본부의 한계 때문에 수사본부는 그동안 해경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못했다. 해경 주도로 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점도 감안됐다.
해경 수사의 핵심은 침몰사고 3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조헬기와 목포해경 123경비정의 구조대원들이 ‘골든타임’을 허비한 경위와 선내 진입을 하지 않은 점이다. 수사본부는 구조헬기와 구조대원들이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을 때는 배가 기울긴 했지만 선내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동이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1시간 30분 동안 적극적인 구조에 나서지 않고 배에서 빠져나온 승객들을 구조하는 소극적인 구조에만 머물렀다.
수사본부는 이 같은 조사를 위해서는 해경을 배제하고 검찰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수사본부는 초기에 부실하게 대응한 구조대원과 해경 지휘부에 업무상 과실치사는 물론 직무유기죄의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사본부는 초기 구조에 나선 구조대원들이 승객들의 구조를 고의적으로 외면했다는 고의성을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 접수 때부터 해경의 어설픈 대응도 수사의 대상이다. 최초 신고자인 안산 단원고 학생 최모군에게 배 이름 대신 “위도와 경도를 말하라”고 요구한 것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수사본부는 파악하고 있다.
수사본부 총괄책임자인 안상돈 광주고검 차장검사는 “구조 과정의 잘못도 엄정하게 수사하겠다”며 해경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 의지를 보였다.
한편 새누리당 ‘세월호 침몰사고 대책특위’는 이날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해경의 유착 의혹 등 총 6개 항에 대해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천종 기자, 목포=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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