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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한 달 일했을 뿐인데… ‘냉혹한 法’

입력 : 2014-01-02 18:31:19 수정 : 2014-01-02 22: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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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초 전업주부 A씨는 남편의 보증채무 10억원을 파산면책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가 기각판결을 받고 망연자실했다. 40대 초반인 A씨는 남편이 사업을 벌이면서 서준 보증채무를 떠안았지만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다.

법원은 A씨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파산신청을 한 것은 남용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에 제출한 소득 증빙자료에서 5년 전인 2008년 명문대 간호학과 출신인 A씨가 한 달간 지방 중소병원에서 일한 사실이 근거였다. A씨는 남편과 결혼한 뒤 10년간 한 달을 빼놓곤 줄곧 아이 뒷바라지와 집안 일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법원은 그러나 A씨가 직업을 구해 남편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냉혹한 판결을 내렸다.

개인회생 전문인 한 변호사는 “A씨와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자격증을 소지한 경우 면책결정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60대 이상의 노인이 되지 않고는 쉽사리 면책결정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와 법무사도 채무불이행자의 열악한 처지와 여건에도 파산면책보다는 개인회생 쪽으로 적극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월수입이 70만∼80만원에 불과한데도 개인회생을 신청해 개인회생인가→변제연체→폐지결정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개인회생 신청자 수는 2010년 4만6972건에서 지난해 10만4909건으로 불과 3년 만에 두 배 이상 폭증했다. 반면 개인파산 신청은 2007년 15만4039건 이후 줄곧 하락해 연간 6만명 선으로 급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파산면책률도 2006년 97.8% 이후 줄곧 하락해 2012년 88.6%, 2013년 1∼11월 89.5%로 뚝 떨어졌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파산제도 도입 초기 때 우리도 파산이 미국처럼 많았는데 어느 순간 면책을 해주지 않기 시작했다”면서 “법원에서 ‘벌 돈이 있다면 갚아야 한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친채권자 입장으로 기울며 과도하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번 돈을 빚 상환에 다 충당해야 한다면 누가 거지로 살지 돈을 벌고자 하겠는가”라면서 “사회적 관점에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별기획취재팀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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