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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로 떠나는 美 서부 여행(中)

입력 : 2013-12-21 14:02:54 수정 : 2013-12-21 14: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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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자이언 캐니언. 사암으로 이뤄진 붉은 협곡으로 캠핑카를 타고 떠나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일행은 독특한 체험을 하기로 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륙을 달리다 보면 흔한 풍경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바로 집채만 한 커다란 버스 형태의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다.

▶ 캠핑장의 아침, 미국 주택가를 쏙 빼닮아

최대 10명이 잘 수 있는 커다란 달리는 집, ‘모터홈’이라 부르는 캠핑카에서 자고 일어났다. 밤새 전기히터가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별 보기 좋은 명당일 것 같아 잡았던 2층침대의 아래칸이 사실은 히터 옆이었다. 밤새 따듯한 바람 덕에 편안한 잠자리가 됐다. 눈을 뜨니 어느덧 아침 8시. 부지런한 사람들은 밤새 피웠던 모닥불을 발로 뒤적이며 담배를 피운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아직도 남은 듯 옷을 든든하게 껴입은 모습이다.

캠핑카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니 미국인 노부부가 여기저기 보인다. 커다란 개를 끌고 아침 산책중이다. 바로 뒤쪽 캠핑카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가 있다.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노는 중. 아이들의 아빠는 하나씩 차근차근 짐을 정리한다. 캠핑장의 모습이 미국 주택가의 아침풍경과 똑같다. 조깅 하는 사람, 산책하는 노인들에 아이들까지 전형적인 모습이 캠핑장에도 이어진다.

▶ 아이들은 캠핑장 주변에서 킥보드를 타고 놀고 어른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있다.
▶ 캠핑장은 차가 줄지어 서 있는 것만 제외하면 미국의 주택가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 쌀쌀하지만 상쾌한 캠핑장의 아침

캠핑장은 야생동물이 내려올 수 있고 여름에는 벌레가 꼬일 수 있으니 음식물을 깨끗이 치워야한다. 일행도 어제 먹었던 고기들과 야채, 맥주 캔까지 깔끔하게 치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보니 캠핑장 어디에도 너저분한 모습은 없다. 캠핑을 하며 나온 쓰레기는 비닐봉투에 담아 조금 떨어진 쓰레기장에 버린다. 우리처럼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캔과 병과 스티로폼, 음식물을 모두 한꺼번에 담아 버린다. 화로의 재까지 분리수거를 하는 우리나라 캠핑장에 비하면 설치도, 철수도 간단하다.

아침식사로 토스터기에 베이글을 굽고 즉석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냉동실에서 꺼내 가스레인지에 데운 시래깃국과 비닐 봉지에 따로 담겨있던 배추김치, 갓김치가 입맛을 돋운다. 한인 캠핑카 회사를 이용하니 한식을 먹으며 여행하는 묘미가 있다. 평소 어떤 음식도 문제없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한식을 보니 군침이돈다. 빵보다 역시 밥이다. 냉장고에는 각각 끼니에 맞춰 이름표가 붙은 음식이 들어있다. 한식 케이터링 업체에서 인원수와 식단에 맞춰 반가공 음식을 냉동상태로 제공해준다.

▲ 웅장한 자이언 캐니언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은 자이언 캐니언으로 향했다. 캠핑카를 정리하는 과정은 어제의 반대다. 상하수도 연결을 풀고 전기 플러그를 뺀다. 좌우로 불쑥 나왔던 슬라이딩 공간을 다시 접는다. 홀쭉해진 버스형 캠핑카를 타고 길을 나선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에 어제는 겨우 입구에 도착했으니 오늘은 본격적으로 관광에 나설 때다. 자이언 캐니언 입구에서는 입장료를 받는다. 차당 5달러의 입장료를 내면 7일간 이곳을 통과할 수 있다. 표를 받고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니 괜스레 주변 풍경에 더 눈이 간다.

▶ 길의 한쪽은 붉은 바위산이고 버진강과 인접한 다른쪽은 목장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 한국은 초겨울에 들어선 11월이지만 이곳은 아직 단풍이 남아있다. 곧게 뻗은 길 좌우로 가로수가 있고 그 뒤로는 주택과 여행자를 위한 숙소 등이 늘어섰다.
▶ 자이언 캐니언의 입구. 이곳에서 표를 사고 들어간다.
한국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이곳에는 아직 노란 단풍이 들었다. 곧게 뻗은 길에는 그림처럼 한적한 집이 늘어섰다. 주거지역을 지나니 좌우로 넓은 목장이 이어진다. 푸른 초원에 소나 말이 풀을 뜯고 있다. 목장인 것을 눈치채려면 멀리 떨어진 나무 울타리를 확인해야한다. 마치 대관령의 양떼목장이 계속 이어지는 분위기다. 꽤 넓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의 목장은 작은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규모고 산너머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크기의 목장도 무척 많다고 한다.

자이언 캐니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일단 가보기로 했다. 붉은 산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자이언 마운틴 카멜 도로에 들어섰다. 멀리 올려다본 앞 길에는 터널이 있다. 산을 가로지르게 만들었는데 1923년 공사를 시작한 자동차 전용도로다. 자이언 캐니언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도로로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차와 함께 캐니언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활용되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곳곳에 채광창을 낸 터널이다. 1930년 1.1마일 구간을 뚫어 완공한 터널은 폭발물을 사용할 경우 약한 지반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모두 인력으로만 뚫었다. 또, 당시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인력을 대거 투입했고 터널 중간에는 채광창을 뚫어 햇볕이 터널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커다란 버스형태의 캠핑카로 터널을 통과하려면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터널이 워낙 오래전에 아치형으로 뚫어놓은 것이라 대형차가 지나려면 왕복 2차선의 도로 한가운데를 달려야한다. 폭 238cm, 높이 425cm 이상의 차는 천정이 닿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차는 별도의 요금을 낸다. 15달러를 내면 터널의 가운데로 달릴 수 있도록 다른 차를 통제해준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레인저는 대형차가 오면 한가운데로 혼자 통과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방식이 재밌는 것이 마치 육상 릴레이를 하듯 바통을 주고받는다. 대형차가 있으니 차를 막아달라고 무전을 보내면 반대쪽 레인저가 차를 통제한다. 마지막차의 운전자에게 바통을 주고 터널 건너편 레인저에게 전달해달라고 요청한다. 반대편에서는 바통을 가진 운전자를 기다렸다가 넘겨받고 대형차를 출발시킨다. 우리가 타고있는 캠핑카도 바통을 기다렸다. SUV를 타고 넘어오는 백인 남성은 바통이 신기한 듯 즐거운 표정으로 레인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 자이언 캐니언의 뷰 포인트로 가려면 터널을 지나야한다. 캠핑카는 크기가 커서 15달러를 내고 양방향 차를 통제한 뒤 차로 중앙으로 통과한다.
▶ 터널 입구.
▶ 터널 반대편에서 바통을 들고 온 운전자가 레인저에게 건네주며 인사말을 나눈다. 바통을 전달하는 역할은 흔치않은 경험이라 즐거워했다.
▶ 자연 채광창을 뚫어놓은 자이언 캐니언의 명물 터널.
터널을 지나자 자이언 캐니언 가운데 전망 좋은 곳으로 꼽히는 뷰 포인트 입구가 나타났다. 커다란 캠핑카를 주차장에 세우고 20분 정도 짧은 트래킹을 했다. 주로 차에 앉아서 구경하는 자이언 캐니언에서 이곳은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트래킹 코스다. 트래킹 코스 주변에는 선인장이 피어있고 사암과 침적암, 석회암 등으로 구성된 독특한 산의 둘레를 따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차로 올라오던 그 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구불구불 똬리를 튼 뱀처럼 생긴 길로 개미만한 차들이 올라오고 있다. 시선을 조금 위로 올리자 거대한 협곡이 눈에 들어온다. 난간에 기대어선 일행은 사진찍기에 바쁘다.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는 사람들 옆에는 검은색 줄이 확연한 다람쥐가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을 요량으로 눈치를 보며 앉아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의 모양이 특이하다. 붉은 사암에 풀과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났다. 깎아지른 계곡 아래에는 나무와 풀이 있지만 절벽은 매끈한 암벽이다. 특이한 것은 80여 년 전 완공한 도로다. 인공적으로 만들었지만 위화감이 없다. 자세히 보니 도로는 사암과 같은 붉은 색이다. 주차장의 경계를 알려주는 담벼락도 붉은 벽돌로 쌓았다. 자연 경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 자이언 캐니언 뷰 포인트 입구. 캠핑카USA의 가이드이자 캠핑 투어의 캡틴 알렉스씨가 설명해주고 있다.
▶ 붉은 산의 가장자리를 따라 약 800m를 올라가면 뷰 포인트가 나온다.
▶ 협곡이 이어지는 자이언 캐니언. 건너편을 바라보면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 깎여나간 바위 틈으로 햇볕을 피할 공간이 생겼다. 덕분에 주변 풍경은 마치 외계 행성처럼 기이하다.
▶ 뷰 포인트에 올라서면 아찔한 절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 자이언 캐니언을 비롯한 미국의 국립공원은 사진가에게도 유명한 출사 포인트다. 장관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여행객들은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든다.
▶ 뷰 포인트에서 간식을 먹는 관광객 옆에 다람쥐가 눈치를보며 오간다.
▶ 짧은 트레킹 코스 주변에는 야생 선인장도 피어나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 길가에 차를 세우고 전기밥솥으로 뜨끈한 점심을…

웅장한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니 배꼽시계가 알람을 울린다. 어느덧 시간이 12시를 넘겼다.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점심을 먹으러 우르르 몰려나갈 시간이다. 일행의 뱃속도 별반 다르지 않아 이구동성으로 ‘점심’을 외쳤다. 국립공원이라 뚜렷한 식당도 없는 이곳에서 캠핑카로 여행한다면 끼니 걱정은 없다. 한적한 갓길에 차를 세웠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이고 전자레인지에는 일회용 밥을 넣었다. 냉장고 옆 수납함에서는 한국의 라면이 나왔다. 붉은 비닐에 들어있는 라면이 반갑다. 차 안의 테이블에 앉아서 라면과 밥, 김치로 점심을 먹는다. 갓길에 서 있으니 지나던 이들이 무엇인가 구경거리가 있는가 싶어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종종 산양과 같은 야생동물이 나타나 이를 구경하는 차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간단히 마치고 다시 자이언 캐니언을 둘러본다. 맑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자 한 쪽이 마치 바둑판처럼 갈라진 바위산이 나온다. 미국이니 바둑판이 아니라 ‘체카보드 메사’라고 부른다. 자이언 캐니언에서 여기까지는 약 13마일(21㎞) 거리다. 안타까운 짧은 일정 때문에 이제는 차를 돌려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야한다. 캠핑카와 웅장한 자이언 캐니언과 함께한 짧은 여행이 끝나간다.
▶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자이언 캐니언 한쪽 길에 캠핑카를 세웠다.
▶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을 데우고 밥과 라면을 끓여 풍성한 점심식사를 순식간에 준비했다.
▶ 국립공원 한 가운데서 먹는 식사. 간단한 트레킹도 마쳤으니 밥이 꿀맛이다.
▶ 우리나라의 산과 비교하면 풍경이 색다르다. 온통 붉은 흙과 돌로 이뤄진 산 사이 길에 차가 달리고 있다.
이른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광고하는 미국의 캐니언을 살펴보니 우리나라의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이언 캐니언을 찾는 사람들은 등산을 하기도 한다. 일행이 들어왔던 자이언 캐니언 입구 안내소 부근에도 여러 개의 등산로가 있다. 일행이 찾아갔던 30분 거리의 약 800m 등산로에서 8시간이 걸리는 17㎞의 등산로까지 다양하다.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는 자이언 캐니언 곳곳의 숨겨진 비경을 고화질 영상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시나와바 신전을 향하는 등산로 같은 경우는 계곡의 특성상 일부 등산로는 홍수 위험도 있으니 반드시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 자이언 캐니언을 찾아가려면
▶ 자이언 캐니언의 지도.
▶ 자이언 캐니언에 입장하면 지도와 안내책자를 준다.
한국에서는 인천-라스베이거스행 대한항공을 이용하거나 로스앤젤레스 공항까지 간 뒤 라스베이거스를 지나 북서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캠핑카 투어업체 ‘캠핑카USA( www.campingcarusa.com)’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이언 캐니언, 그랜드 캐니언, 라스베이거스를 돌아오는 5박6일 코스 캠핑카 여행상품을 포함한 맞춤형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자이언 캐니언까지 253㎞ 거리다. 부지런히 다닌다면 하루에 볼 수 있지만 자이언 캐니언 입구 등의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다. 만약 캠핑카 혹은 텐트로 야영을 한다면 선착순으로 정오 전에 캠핑장에 도착해야 한다. 개인 야영시설이 아닌 경우 11월에서 5월 사이는 폐쇄하기도 하니 미리 인터넷과 전화로 정보를 확인하는 게 좋다.

자이언캐니언(미국)/글·사진= 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 사진제공=양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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