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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로 떠나는 美 서부 여행(上)

입력 : 2013-12-09 10:14:24 수정 : 2013-12-09 17: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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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싼 산은 2시간을 내리 달려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북동쪽 유타주로 향하는 15번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옆 차와 보조를 맞추며 달린 차는 정확히 3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변 풍경은 신세계다. 붉은 산은 마치 기암괴석처럼 생겼다. 듬성듬성 들어선 나무는 한국에서 볼 수 없던 종류다. 마치 서부영화의 한가운데 들어온 느낌이다. 능선을 올려보면 인디언이 우리를 감시할 것 같다. 독특한 상상이 펼쳐지는 이곳은 ‘자이언(Zion) 캐니언’이다. 성경에서는 ‘시온’이라고 읽는다.

▶ 1박2일간 함께했던 ‘캠핑카USA’의 클래스A 모터홈. 슬라이딩 방식으로 실내 공간이 확장된다.
▶ 자이언 캐니언으로 향하는 길. 산은 멀리서도 잘 보이지만 빨리 다가오지는 않는다. 직선으로 뚫린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야 산으로 들어간다.

▲ 광활한 미국의 자연, 캠핑카를 타고 떠나보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일행은 독특한 체험을 하기로 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륙을 달리다 보면 흔한 풍경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바로 집채만 한 커다란 버스 형태의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다.

수소문 끝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캠핑카 사업을 하는 한인업체를 찾았다. 우리가 원했던 커다란 버스형태의 캠핑카도 섭외했다. 이번 캠핑은 맛보기에 불과한 1박2일 코스. 원래 미국 서부, 그랜드캐니언을 달리는 캠핑카 여행은 적어도 5박6일은 되어야 한다. 한번 간 길을 돌아오지 않고 국립공원을 이어가며 둥글게 원을 그린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유타주 ‘자이언 캐니언’을 돌아보기로 했다.
▶ 자이언 캐니언. 협곡 아래로는 구비구비 길이 놓여있어 캐니언을 구경하려는 관광객과 지역주민이 차를 타고 이동한다.
미국 서부 네바다주, 유타주에 걸친 국립공원들은 주로 침식 지형으로 인한 웅장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은 그랜드캐니언이다. 이곳은 오랜 시간 암석의 강도에 따라 다른 침식 때문에 협곡이 형성됐다. 단단한 암석은 그대로 남았고 무른 암석은 침식 현상으로 사라져 계곡이 됐다. 침식이 보여주는 장관은 443㎞에 이르는 콜로라도강 양쪽에 펼쳐진다. 수십 곳에 이르는 ‘뷰포인트’를 중심으로 절경을 보여주며 1919년 미국의 국립공원이 됐다.

일행이 향하는 국립공원은 그랜드캐니언과 조금 다른 유타주의 자이언 캐니언(Zion Cannyon). 그랜드캐니언보다 앞선 1909년 국립공원이 됐다. 그랜드캐니언이 높은 계곡 정상에서 풍경을 내려다본다면 자이언 캐니언은 바닥에서 웅장한 계곡을 올려다본다. 자연의 위대함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순간 약속의 땅인 ‘시온’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곳에 오면 일순간에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거대하고 장엄한 산과 봉우리가 주변을 둘러싼다.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흙벽은 경이로운 모습이고 시간과 햇빛의 각도에 따라 바뀌는 독특한 풍경은 무려 100년 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게 했다.

▲ 주방, 화장실, 침실까지 갖춘 ‘모터홈’과 떠나는 길

라스베이거스 호텔 앞에서 캠핑카와 만났다. 멀리서도 보이는 육중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국내에선 ‘캠핑카’라 부르지만 전형적인 ‘콩글리시’다. 미국에선 ‘RV(레크리에이셔널 비히클)’라고 부른다. 여담이지만 한인업체인 이 회사는 과감하게 콩글리시를 회사명을 선택했다. 캠핑카에 ‘Campingcar USA’라는 영어가 눈에 띈다.

문을 열자 계단이 자동으로 내려오며 일행을 반긴다. 난생 처음 보는 초대형 캠핑카다. 미국의 분류에 따르면 ‘클래스 A’에 속한다. 실내로 들어서면 오른쪽엔 커다란 가죽소파 같은 의자가 운전석과 조수석으로 놓여있다. 왼쪽에는 라운지 형태의 소파가 놓였고 주방과 침실, 화장실이 안쪽에 위치했다. 마치 집과 같은 구조로 모든 가전기구와 생활용품이 구비됐다. 냉장고, 세탁기는 물론이다. 이런 대형 캠핑카는 마치 집과 같다 하여 ‘모터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집을 타고 길을 나섰다.
▶ 클래스A의 대형 캠핑카. 연비는 리터당 3~4km 수준이지만 연료탱크 용량이 커서 600km 정도는 거뜬히 달린다.
▶ 캠핑카 실내는 편한 소파가 놓여있어 거실처럼 편한 자세로 이동이 가능하다.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동안 캠핑카는 빠르지 않아도 꾸준히 달린다. 복잡한 라스베이거스를 빠져나오니 차가 많아도 정체는 없다. 편도 2차선의 뻥 뚫린 길이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커다란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것이 은퇴한 노부부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집에 비해 불편하지 않고 멋진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돌아보기 좋은 게 장점이다. 도로에서는 어렵지 않게 커다란 캠핑카를 만날 수 있다. 우리로 치면 승합차를 개조한 캠핑카는 오히려 드물다. 픽업트럭 견인고리에 트레일러 형태를 붙인 캠핑카가 주로 다니지만 버스 형태의 클래스A도 종종 눈에 띈다. 미국에서도 대당 2억원에 이르는 고급 차다. 이 차의 특징은 확장되는 실내공간이다. 불과 십수 년 전부터 등장한 슬라이딩 방식은 실내 공간을 두 배 가까이 늘려준다.

▲ 캠핑의 별미 바비큐와 호사스러운 온수샤워까지

캠핑 첫날은 자이언 국립공원 코앞에서 멈췄다. 15분만 들어가면 국립공원이지만 버진 강변에 있는 RV 파크에 자리를 잡았다. 40여 대의 RV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한국의 버스와 비슷한 크기인 캠핑카를 배정받은 자리에 올렸다. 캠핑장은 마치 미국의 주택가를 작게 옮겨놓은 모습이다. 각각 섹션별로 시멘트 바닥의 주차장이 만들어져있다. 옆에는 캠핑카에 연결하는 전기, 상·하수도 시설이 놓여있고 바비큐 시설까지 갖춰졌다. 또, 커다란 나무가 늘어서 더운 여름에서 그늘을 만들어준다.
▶ 이날 숙박지로 정한 자이언 캐니언 RV파크에 도착했다. 슬라이딩 기능을 이용해 실내를 확장했다.
▶ 달릴때와 비교해 무척 넓은 공간이 생긴다. 슬라이딩 기능이 등장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 일이다.
▶ 수평을 맞추기 위한 다리가 각 바퀴 앞에서 내려온다. 실내에서 버튼 하나로 조작할 수 있다.
캠핑카를 세우고 일행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먼저, 차를 고정하기 위한 다리를 내렸다. 4개의 바퀴 옆에 있는 다리는 운전석에서 버튼 하나로 올리고 내린다. 수평을 맞추는 기능도 있어서 어느 곳에 세우더라도 캠핑카는 수평 상태를 유지한다. 이어 이 차의 특징인 실내공간을 확장시킨다. 차체의 중간 거실의 한쪽이 뒤로 밀려나며 약 1.5m 폭이 넓어진다. 침실이 있는 뒷공간도 마찬가지다. 양쪽으로 슬라이딩 되며 공간이 늘어난다. 밖에서 보면 마치 블록을 쌓은 듯 좌우로 튀어나왔다.

이제 집짓기의 마무리 단계다. 전기와 상하수도를 연결할 차례다. 뒷바퀴 옆에 있는 패널을 열자 전기와 상·하수도 연결관이 나온다. 캠핑카는 이제 엔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캠핑장에서는 물과 전기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 상·하수도는 배관을 먼저 연결하고 하수를 먼저 빼낸다. 이어 깨끗한 물을 통과시켜 세척도 겸한다. 전기를 켜고 앞유리에 있는 커튼을 쳤다. 아늑한 공간이 마련됐다.
▶ 캠핑장에 있는 전기 콘센트와 상·하수도를 연결하면 집이 완성된다.
▶ 맛있게 익은 스테이크. 캠핑의 별미는 역시 바비큐다.
▶ 두 대의 캠핑카 중간에 저녁상을 차렸다. 캠핑카에서 꺼낸 이동 조명을 설치하고 불을 지피니 아늑한 공간이 된다.
▶ 캠핑의 별미 바비큐. 장작을 이용해 불을 붙이고 캠핑장에 구비된 석쇠의 높이를 조절해 고기를 구웠다.
그 사이 또 다른 일행은 저녁식사 준비에 나섰다. 주방에 있던 전기밥솥에서 끓는 소리가 난다. 캠핑카 바닥 트렁크에서 꺼낸 테이블과 의자에 식재료를 꺼내놨다. 바비큐 데크를 철 수세미로 닦아내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건조한 사막의 장작이라 그런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간다. 벌겋게 올라오던 불꽃이 사라지자 고기를 익히기 딱 좋은 불만 남았다. 두껍게 썰어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불 위에 올렸다.

라스베이거스 사막에서 산으로 올라오니 11월 초 날씨가 무척 춥다. 일행은 불 옆에 모여 음식을 준비했다. 샐러드와 소고기, 김치가 함께한 한·미 연합 식탁이 차려졌다. 한국의 캠핑장과 다른 풍경은 조용하다는 것. 저녁 8시를 조금 넘겼는데 주변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식사를 일찍 마친 캠핑족들은 차에 들어가서 TV를 보거나 취미생활을 한다. 캠핑카에 작은 차를 메달아 온 사람들은 인근 마을에 놀러가기도 한다. 자리에 앉아 밤새도록 시끌벅적한 우리나라 캠핑장과는 다른 분위기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남은 불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조금 늦게 도착한 또 다른 한국인 캠핑카 일행이 함께했다. 육아휴직 중인 회사원 가족이다. 캐나다에서 6개월간 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일정에 참가했다고 한다.

▲ 사막의 별을 보며 2층 침대로…

내일은 본격적으로 자이언 캐니언에 들어간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때다. 일행은 순서대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캠핑카에는 퀸사이즈 침대 1개와 싱글 침대 4개, 더블사이즈 침대가 되는 소파, 싱글사이즈 침대가 되는 소파 등 총 7개의 침대가 있다. 가족들이 함께 오면 최대 10명은 거뜬하게 잘 수 있다고 한다.
▶ 캠핑카 한쪽 면을 차지하는 2층 침대.
▶ 캠핑장에 있는 화장실을 겸한 샤워실. 넓고 깔끔한데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캠핑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차에 있는 샤워부스를 이용해야겠지만 편리함을 택했다. 이곳 캠핑장 시설이 좋은 편이고 샤워부스 역시 널찍하게 마련됐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겸한 널찍한 샤워실은 수증기가 가득 찰 정도로 온수가 잘 나온다.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으로 출발했지만 의외의 편리함에 감탄한다. 샤워장 옆에는 작은 수영장도 있다. 사무실을 겸한 통나무집에는 미니바와 포켓볼 당구대도 있고 여행정보를 확인하고 프린트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마련됐다.

창가에 있는 2층 침대의 아래칸에 누웠다. 어릴 적 집에 있던 2층 침대가 생각난다. 통로 쪽 커튼을 치니 아늑한 공간이 된다. 실내 불빛이 사라지자 창문 밖에는 쏟아질 듯 밝은 별이 늘어섰다. 전기로 작동하는 히터가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 사막의 캠핑 첫날밤이 지나간다.

자이언캐니언(미국 유타주)=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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