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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사교육 광풍] (중)영유아 사교육시장은 무풍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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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05 19:37:19 수정 : 2013-08-06 13: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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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학습지 ‘불안 마케팅’ 심화
미국서 2년 넘게 살다온 아이도 영어학원 레벨테스트서 낙제점
# 강윤영(가명·35) 씨는 아들이 다섯 살 때 유명 학습지 영업사원이 보여준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사교육 시장에 첫발을 들였다. 영업사원은 그에게 “요즘 교과서가 이런데 미리 공부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겠어요”라며 빈칸이 수두룩 한 교과서를 펼쳐 보였다. 강씨는 “과연 우리 애가 혼자서 저 빈칸을 다 채울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그 자리에서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대부분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어릴 때부터 자녀 사교육을 시작한다. 여기에 ‘더 좋은, 차별화된 교육환경을 주겠다’는 욕심까지 가세하면 ‘사교육 늪’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워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교육업체들은 부모의 이런 욕망과 불안심리를 마케팅에 적극 이용하고, 공략 대상 연령을 점점 낮추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취학연령이 되면 대학 입학사정관제와 수시모집전형 등을 들먹이며 사교육업체의 불안 마케팅은 더욱 노골화하고 대담해진다.

◆부모의 불안이 사교육 시장의 자양분


소정민(가명·37)씨는 1월 아홉 살 난 딸을 유명 P영어학원에 보내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4세 때부터 영어 방문수업을 받아온 그의 딸은 본사에서 우수회원으로 뽑히고 외국인과 간단한 대화도 하는데, 레벨테스트(수준시험)에서 최하점을 받았다.

상담실장은 “왜 학습지만 하며 애를 방치했나요”라고 핀잔을 주더니 “이 실력으로는 최하위 반에 들어가도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겁을 줬다. 소씨는 “어느 지역에 사는지 물어보기까지 해 자존심이 상했고, 내가 정말 아이를 망쳤나 하는 불안감에 며칠간 잠을 설쳤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소씨의 딸은 다른 영어학원 2곳에서 최상위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어려운 레벨테스트는 어린이의 수준을 파악해 맞춤형 수업을 제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부모와 학생의 기를 죽이고 겁을 주는 불안 마케팅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시험을 치러 성적이 돼야 들어갈 수 있는 입시학원의 명문대 준비반 운영 행태가 유·아동 학원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유아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서는 5세 아동에게도 레벨테스트를 실시해 수준별로 반을 배치하고 있다.

한영(9·잠실)이도 얼마 전 서울 대치동 유명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에서 떨어졌다. 미국에서 2년을 살다 왔고 유명 사립대 주최 영어 경시대회에서 최고점까지 받았는데, 학원 입학시험 커트라인 60점을 넘지 못했다.

학원 원장은 한영이 엄마에게 “미국에서 2년 살다 온 게 대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여기는 그런 애들 천지다”라면서 재시험에 응시하라고 했다. 한영이 엄마 김모(41)씨는 “대학 입시도 아니고 미국에서 살다 온 애도 못 푸는 문제로 영어학원 입학을 결정 짓는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면서 “자존심을 건드리고 오기를 발동하게 해 학원에 매달리게 하려는 심보 같다”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병원까지 가세한 불안 마케팅

부모의 불안감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기는 병원이나 심리상담소 등도 마찬가지다.

이민아(40)씨는 3년 전 생후 30개월 된 아들이 말이 더딘 것 같아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 갔다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의사는 “선천적인 인지장애가 있으니 애한테 평생 공부는 기대하지 말라”며 회당 5만원이나 하는 인지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권했다. 현재 7세가 된 그의 아들은 또박또박 말도 잘하고 유치원 수업도 잘 따라가고 있다.

대부분의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은 “30개월 아이에게 미래의 학습능력까지 예단하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입을 모은다. 곽영숙 소아정신과학회 회장은 “인지치료라는 말은 비즈니스 시장에서 만든 것이지 의학적으로는 그런 용어를 안 쓴다”면서 “아이에게 관심이 많고 경제력이 있는 부모들이 심각한 상태가 아닌데도 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같은 불안심리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나쁜 짓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 강남과 목동 일대에는 주의산만과 학습거부 등으로 소아정신과를 찾는 어린이들에게 ‘학습치료’라는 명목으로 교과목을 가르치는 곳이 늘고 있다.

‘사교육 걱정 없는세상’의 김승현 정책실장은 “허위·과대 광고는 학원법의 규제 대상이지만 불안 마케팅은 적용 근거가 모호한 데다 학부모들에게 통하기 때문에 갈수록 과감해진다”면서 “선행학습을 유도할 때는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학습지 업체와 학원, 인터넷 카페, 옆집 엄마 등이 여론을 주도하면서 사교육 시장 논리가 구석구석 침투되는 만큼 중심을 잡는 부모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미·윤지로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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