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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탈북자> ②불법에 빠져드는 `北女'

입력 : 2011-12-12 10:54:22 수정 : 2011-12-12 10: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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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돈 번다" 서로 성매매 알선
질병·우울증에 구직의욕 잃어
인신매매 조직에 팔려 중국으로 갔던 이모(34.여)씨는 운 좋게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2008년 한국에 입국했다.

하나원에서 나온 김씨는 생활정보지를 뒤져 여러 식당을 전전하며 면접을 봤지만 입국한 지 얼마 안 되고 봉사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가 알고 지내던 탈북자 친구가 "노래방에서 일하면 한 달에 300만원을 준다"며 "사장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으니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하나원에서 퇴소할 때 받은 300만원 중 북한 가족에게 150만원을 보내고, 중고가구를 사들이고 나니 돈이 없었던 A씨는 결국 친구를 따라 지방으로 떠났다.

김씨와 비슷한 시기 입국한 류모(49.여)씨는 과일가게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8개월 만에 쫓겨났다.

탈북 과정과 중국 체류 기간 여러 어려움을 겪다보니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왔고, 장시간 서서 일해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하자 해고당했다.

신문과 인터넷을 뒤져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45세 미만이라는 나이 제한이 일쑤였고 북한 출신이라고 하면 한순간에 시선이 달라졌다.

가족에게 돈을 부쳐야 하는데 돌파구가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증이 심해졌고 최근에는 4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생계 막막…친구 따라 성매매

탈북여성들은 '기회의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편에서는 쉽게 돈을 벌겠다며 성매매 등 불법의 유혹에 빠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예 일할 의욕을 잃고 있다.

2010년까지 국내로 들어온 총 2만360명의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이 69%에 이르고, 2010년 한해 입국자 중 여성의 비율은 77%에 육박했다.

탈북여성 중 74%가 20∼40대로 왕성한 경제활동이 필요한 연령대다.

이들은 북에 있는 가족과 중국에 있는 자녀를 경제적으로 도와야 하고, 하루빨리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을 꾸려 정착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이 때문에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는 이들에게 제일 큰 고민거리다.

하지만 돈을 빨리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범죄로 쉽게 이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지난해 10월 경찰은 일본 원정 성매매에 나선 탈북여성과 이들을 고용한 마사지 업소 사장을 검거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은 "여기서 직장 얻기가 어려웠던 여성들이 한 달에 1천5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원정 성매매에 나섰다"며 "대부분 가족의 탈북비용과 생계비 마련을 동기로 들었다"고 전했다.

놀라운 점은 성매매 알선자와 성매매자 모두 탈북여성으로 서로 성 상품화를 부추긴 점이 확실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 경찰관은 "마사지 업주는 탈북한 지 오래된 여성으로 포주짓을 하며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며 "이런 포주들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면서 탈북자 사회의 인맥을 이용해 탈북여성들을 포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탈북여성들의 유흥업 취업은 2005년 정부 정착금이 줄어든 이후 확산했지만, 정확한 실태는 한 번도 파악된 적이 없다.

탈북자 지원기관의 한 관계자는 "여자들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올 때 노래방에 많이 팔려가 이미 유흥업소 경험이 있다보니 구직이 어려워지면 쉬운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탈북여성이 단지 쉽게 돈 버는 방법만 추구한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며 우리 사회의 탈북자 기피 분위기가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북여성들은 입국 당시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만연해 있어 큰 범죄가 아니라고 오해하고 있고, 북한의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변 탈북자를 그저 따라나서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보험사기, 위장결혼, 마약운반, 최저생계비 편법수령 등 탈북여성이 연루된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드러나면서 탈북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싸늘해지고 있다.

◇방향 잃은 탈북여성…"맞춤형 지원 필요"

젊은층이 불법의 유혹에 빠진다면 중장년층은 일할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질병이다. 여성들은 몇 년에 걸친 탈북 과정에서 탈진 상태가 되기 일쑤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탈북여성 885명을 조사한 결과 68%가 관절염, 요통, 좌골통, 디스크, 위염 등을 앓고 있거나 치료를 받았다고 답했다.

또 우울증,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정신분열병 등을 앓는 경우도 많다.

한 탈북자 상담실의 간사는 "수년간의 탈북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한국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데 집에는 위로해 줄 가족이 없으니 우울증이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주변환경이 탈북여성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탈북자들은 탈북자 인맥에 정보를 주로 의존하게 되는 데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 다수가 손해를 입게 되는 구조다.

탈북여성 김모(37)씨는 "불법 다단계 업체의 유혹에 솔깃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수십 명의 탈북여성이 손을 댔다가 정부가 지원한 전세보증금까지 날린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또 탈북자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관련 단체들의 현금제공 형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탈북자 전문상담사 임향(38.여)씨는 "정부가 주최하는 취업박람회나 설문조사에 참석만 해도 몇만 원씩 주기 때문에 `힘들게 돈을 벌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며 "이런 행태가 결국 탈북자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탈북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8.6%로 일반국민의 참가율 61.3%에 비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신미녀 대표는 "탈북여성들은 한국 사회의 차별도 문제지만 탈북과정에서 생긴 많은 문제가 해결돼야 직장에서 정착할 수 있다"며 "전문 상담사들을 길러내 개인 맞춤형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연구위원은 "현재 탈북여성은 정착후 1년 동안만 취업 알선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1년 만에 제대로 정착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대부분 잦은 이직과 가족 해체 등 불안정한 정착과정을 겪는 만큼 지원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 연구위원은 또 "성매매 유입을 막으려면 성매매 행위로 인한 법률상 제재, 건강상 후유증 등을 하나원에서 적절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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