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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잃은 문화재 복원] <3>화학안료로 뒤덮는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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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4-27 09:35:04 수정 : 2011-04-27 09: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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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록’ 대신 ‘도료’ 입은 단청… 겉만 화려 속은 썩는다
그동안 궁궐과 사찰 등 고건축물에 전통 천연안료 대신 현대식 화학안료로 단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고건축물이 한결같이 밝고 화려해지면서 은은하고 차분한 전통미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특히 화학안료는 목재가 ‘숨’을 쉬지 못하게 막아 문화재를 망친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문화재 복원 분야에도 스며들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화학안료로 단청을 해왔다는 지적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천연안료와 화학안료의 장단점을 면밀히 연구해 단청용 대체안료를 개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선시대 5대 궁궐과 숭례문 등 주요 문화재만이라도 전통 천연안료 단청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6일 문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청 공사에서 기둥에 칠하는 붉은색 석간주와 함께 가장 많이 쓰이는 안료는 녹색 계열의 ‘뇌록’이다. 단청하려면 맨 먼저 ‘뇌록가칠’이라는 바탕칠을 한 뒤 그 위에 다른 색으로 문양을 그려 넣어야 한다. 가칠이 잘못되면 다른 색을 아무리 잘 칠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단청에서 뇌록은 진채(眞彩), 당채(唐彩), 석채(石彩)로 불리는 돌가루 성분의 안료를 말한다. 뇌록은 조선시대에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 금은과 맞바꿀 정도로 비쌌는데, 1900년대 초반 서구의 화학안료가 들어오면서 밀려났다. 지금은 모든 단청 공사에서 현대식 화학안료인 ‘양록(에메랄드 그린)’으로 뇌록가칠을 하고 있다. 뇌록가칠이 명칭으로만 남아 있을 뿐 실상은 ‘도료가칠’인 셈이다.

전통 바탕칠 ‘뇌록’ 이름뿐

문화재청의 ‘문화재수리 표준시방서’는 단청 공사에 전통 방법으로 생산된 안료와 시방서에 제시된 안료와 아교 등을 쓰도록 하고 있다. 시방서는 안료로 화학안료를, 교착제로 아크릴에멀션 같은 합성수지를 쓰는 길도 열어뒀다. 기술자들이 각자 다른 화학안료를 쓰다보니 우리 고유 단청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안병찬 경주대 교수 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국사 대웅전, 기림사 대적광전, 보경사 적광전과 경복궁 근정전 등 주요 건축물 단청에서는 뇌록 성분이 검출된다. 석채의 색감은 강하면서도 은은해 아름답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이 바로 이 석채를 써서 깊은 맛을 준다. 또 석채는 통풍성이 좋아 곰팡이균 성장 속도를 늦춰 목재가 오래간다.

반면에 화학안료를 쓰면 전통적인 색감을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무에 막을 형성해 쉽게 썩고 중금속인 비소 성분이 들어 있어 환경에도 좋지 않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바이오소재센터 김진규 기술원은 “환경 오염이 없고 값이 싸며 우수한 내후성을 지닌 대체안료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단청장 중에 어느 누구도 석채로 대규모 단청 공사를 한 경험이 없어 국보 1호 숭례문에 바로 석채 기술을 적용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석채가 돌가루다 보니 입자 크기에 따라, 칠하는 횟수에 따라 색깔이 달라져 특별한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루기가 무척 까다로운 아교에 석채를 개어 써야 한다. 아교는 농도를 맞추기가 어렵고 작업할 분량을 당일 녹여 써야 하며,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더워도 작업할 수가 없다. 아교는 동물의 가죽이나 뼈를 고아 농축해 만드는데, 국내에서는 1980년대 대량 생산마저 중단된 상태다.

장인도 석채공사 경험 없어

숭례문 단청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단청장 홍창원(56)씨는 “석채를 써보지 않았으나 실험을 해서 큰 지장이 없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홍씨의 단청장 심사에 참여한 윤열수 가회박물관장도 “단청장은 전통 안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안다”며 “석채나 아교 등 재료를 구하지 못해서 안 한 것이지 구해다 주면 다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전통 석채를 연구해온 안병찬 교수는 “전에 10대에 단청 일을 시작해 단청장에 오른 70대 장인에게 뇌록석을 보여줬더니 자신도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다”면서 “석채 기술을 작년에 이미 연구했어야 하는데 실기했다. 숭례문에 바로 적용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화재 보존전문가 이상현씨는 “숭례문 단청에 천연안료를 쓰려면 불화 등에 천연안료를 써본 사람도 참여시키고 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july1st@segye.com

●단청=넓게는 목조건축물이나 고분, 공예품, 조각상 등에 문양을 그리고 채색하는 것을 말하며, 좁게는 사찰이나 궁궐 등 목조건축물에 장엄으로 그려진 그림이나 문양을 일컫는다.
●뇌록=천연산 희귀광석인 뇌록석을 곱게 갈아 만든 석채로 색상이 선명하고 빛깔이 곱다. 조선시대 국내에서는 경북 포항시 장기면 뇌성산에서 생산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 썼다.
●아교=동물의 가죽이나 뼈 등을 석회수에 담가 지방을 제거하고 끓여서 추출하는데, 접착력이 없는 분말 상태의 안료를 칠하는 교착제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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