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근해 저수온 현상에 오징어·고등어도 품귀
“새품종 개발·농민피해 보상 등 장기대책 시급” 지금까지 친정이나 시댁에서 보내주는 김치를 먹던 결혼 5년차 주부 신소정(31)씨는 지난주 난생 처음 마트에서 김치를 샀다. 배추값이 너무 올라 더 이상 손벌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신씨는 29일 “어머니도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가야 한다”면서 “배추가격이 ‘금값’인데 쉽게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한반도 이상기온의 여파가 서민들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잦은 비와 일조량 부족 등으로 농사를 망친 배추와 무 등 재료 가격 폭등이 ‘김치 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민이 즐겨 먹는 일부 생선도 해수 온도가 바뀌면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채소값 급등에 위협받는 식탁
29일 업계에 따르면 배추 한 포기가 소매 기준으로 1만5000원에 육박하는 등 채소값이 일제히 오르면서 영세 식당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A식당 관계자는 “상반기 기준으로 하루 30만원 상당의 김치를 구입했는데 이번 주 들어 50만원을 넘었다”며 “통상 2∼3일 내 대금을 결제했는데 김치 값이 폭등하면서 5일 이상 밀려 결제한다”고 토로했다.
이날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상품 도매가 기준으로 배추 10㎏은 2만4408원(작년 대비 354.1% 상승), 무 18㎏은 3만4897원(319.4%), 풋고추 10㎏은 5만6554원(110.0%)에 거래됐다. 양배추와 열무도 각각 8㎏당 1만8097원(388.8%)과 4㎏당 5537원(100.3%)에 거래됐다. 상추는 4㎏당 3만4783원(390.9%), 오이는 100개당 5만4834원(302.3%)으로 고공행진을 했다.
더 이상 김치로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업체들은 수입 의존도를 키우거나 아예 생산을 포기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김치 수입량은 1억t을 돌파, 모두 5714만4053달러어치를 들여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 4390만8달러(9811만8873t)보다 23.1% 증가한 수치다.
지방의 A김치 회사 관계자는 “구매과장이 강원도에 살다시피 하지만 배추를 제때 못 대고 있다”면서 “우리는 농협이 운영하는 거라 적자를 감내하고 있지만 영세업자들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식탁대란’의 가장 큰 원인은 ‘이상기후’ 탓이다. 올해 우리나라에선 고온과 잦은 강수로 제때 씨를 뿌리지 못해 농작물 작황이 나쁜 데다 병충해까지 기승을 부렸다.
◆생선값도 하늘 높은 줄 몰라
기후변화는 비단 농민들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주름살도 늘리고 있다. 올해 초부터 연근해에서 나타난 저수온 현상으로 오징어, 고등어의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이 탓에 가격만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이날 부산공동어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500∼1700원에 위탁판매된 오징어 1㎏(약 3마리) 가격이 3000원 수준까지 올랐다. 대형마트와 시장에서 지난해 1500∼1600원에 팔린 오징어 1마리는 올해 2000원에 거래된다. 30㎝짜리 고등어 1마리 소매가도 지난해 9월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문제는 이상기온이 ‘단발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형편이다.
지난해 국립기상연구소의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에 따르면 21세기에 모든 에너지원이 균형적으로 사용된다고 가정할 때 21세기 말(2071∼2100년)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20세기 말에 비해 4도 오르고, 해수면은 약 1m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100년간 평균기온이 1.5도(겨울 1.9도, 여름 0.3도) 상승했고, 계절 길이도 바뀌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창길 박사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품종개발과 농업용수 관리, 생산기술개발 등이 절실하다”면서 “기후변화 대책이 단기간에 나오기 힘든 현실을 감안해 농민 피해를 적절히 보상해주는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나기천·조현일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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