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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온정 그리운 노숙견들의 안식처

입력 : 2004-05-14 10:11:00 수정 : 2004-05-14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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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 ''하늘 담은 집'' “힘들지만 어쩔 수 없어요. 내보내면 죽게 될 ‘아이들’인데 힘들어도 함께 살아야죠.”
충북 음성군 생극면의 ‘하늘 담은 집’에서 만난 이지숙(39·가명)씨는 깊고 긴 한숨을 토해내며 이렇게 말했다. 비닐하우스로 둘러싸여 인적조차 드문 데다 한 줄기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작은 시멘트 집. 이곳에서 그는 버려진 개 43마리를 키우며 세 살배기 딸 민아(가명)와 함께 살고 있다.
민아네 집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문을 열기도 전에 집 안에서 풍겨나는 개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찌르고 낯선 사람의 기척을 느낀 개들이 다 같이 컹컹 짖어대는 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문을 열자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오물에 절은 실내에서 뿜어나오는 유독가스 탓에 눈이 시큰거려 제대로 뜨기가 힘들다.

간신히 눈을 뜨고 살펴본 집 안은 차라리 눈을 도로 감고 싶을 정도다. 네 평 남짓한 방안에 뒤엉켜 있는 43마리의 개들과 울고 있는 어린아이.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자다가 깨어난 민아는 자지러지듯 울어댄다. 흥분 상태인 개들이 이리저리 뛰는 통에 몸집 작은 아이는 개들에게 치이고 또 밟히고 있었다.
이씨의 이런 생활은 동물보호단체 ‘아름품’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인근에 살고 있는 아름품 회원인 김옥주(43)씨가 지난 3월 자신이 다니던 성당을 통해 이씨를 알게 됐고, 아름품에 구조를 요청했다. “하늘을 볼 수 없는 그곳 ‘아이들’이 햇빛을 보는 일이 급선무라 싶어 ‘하늘 담은 집’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개들과 함께 굶어가며 사는 모녀를 도와주세요.”

청주에 살며 버려진 개들을 하나둘 데려다 기르던 이씨. 그는 주민들이 불어나는 개들을 못마땅해하자 2000년 결국 개 20마리를 끌고 이곳 음성 시골 자락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시골에서도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일은 어려웠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이씨는 결국 안으로 문을 걸어잠갔다.
아름품 회원들이 마당에 울타리를 쳐주기 전까지 개들은 방안에서 이씨 모녀와 함께 살았다. 이제는 울타리가 생겨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다행히 개들을 풀어놓을 수 있다. 지난 겨울, 아들이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어린 민아를 혼자 두고 일을 나가지도 못해 개들은 물론 두 모녀조차 먹고살기가 힘들어졌다.
사료를 하루에 7g씩 먹는 개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지는 오래다. 피부병에 걸렸거나 다리 한쪽을 못 쓰는 개도 있지만 치료는 꿈도 못 꿀 지경. 다행히 아름품의 도움으로 수컷들은 중성화수술을 해서 더 이상의 번식은 막은 상태다.

이씨도 입양을 생각했다. 하지만 “대신 잘 키워주겠다”며 데려간 개들은 금세 되돌아오거나 다시 버려졌다. 그 뒤로 어디 보낸다는 생각을 접었다. “비싼 수입견이나 혈통 있는 종자도 아니잖아요. 이름 없는 잡종개니까 사람들이 잘 키우려고 하지 않아요. 이젠 아무데도 안 보내려고요. 어쩌겠어요. 힘들어도 같이 사는 수밖에….” 보호소에 보내면 어떠냐는 질문에 “안락사당할게 뻔한데 어떻게 보내느냐”며 이씨는 오히려 반문했다.
이씨에게 개들은 딸 민아와 마찬가지로 혈육 같은 존재가 됐다. 한방에 사는 개들이 간혹 민아를 할퀼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할 정도다. 버려진 개들을 하나둘 데려다 기른 지 벌써 10년째. 보기에는 모두 생김이 비슷한 누렁이다.
하지만 이씨는 “제일 큰 놈인 ‘실이’부터 6개월 된 막내 ‘막둥이’ ‘순둥이’까지 모두 제 이름이 있다”며 43마리나 되는 개들을 하나하나 챙긴다. “애들이 전부 자기 이름을 알아들어요.”
이씨는 한 해 24만원의 집세를 내면서 지금의 집에서 살고 있다.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자기 힘들 만큼 좁은 공간이지만, 이마저도 올 가을에는 비워줘야 한다. “염치없다”며 취재를 한 달 넘게 거부해오던 이씨가 마음을 바꾼 것은 이런 막막함 때문이기도 했다.
아름품은 지난 4월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하늘 담은 집 돕기’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으며, 사료나 개집 등 물품 후원도 받고 있다. 문의는 withanimal.net.
음성=글 박은주, 사진 이종덕기자
/wine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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