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성란 소설가 |
생과 사가 갈렸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당장 하루하루가 걱정이다. 잠자리는커녕 먹을거리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흙 속에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를 줍는 노인과 식수를 얻기 위해 아우성치는 사람의 모습에서 살아남은 자의 다급함이 느껴진다. 사진으로는 남길 수 없었을 그날 그 자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손쓸 겨를조차 주지 않은 채 재앙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진작에 예고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호수의 물이 말라붙고 수십 마리의 두꺼비떼가 도로를 뒤덮었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에 조금만 귀기울였다면 피해를 좀 줄일 수는 있지 않았을까. 1976년의 허베이성 탕산 지진을 선례로 삼아 내진설계가 된 건축은 물론 관리에서 힘썼다면 사정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공장과 학교가 무너져 많은 피해를 낸 사실을 감안한다면 대형건물조차 관리가 허술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고 마음 아파 탄성을 지르다가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재앙이 어디 이웃나라 이야기일 뿐이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재앙이 나에게 닥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서해안에서는 순식간에 너울이 일어 휴일을 즐기러 나왔던 가족들을 덮쳤다. 재앙은 부표 너머 먼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의 발전과는 다른 행보로 재앙은 우리의 발목 가까운 곳까지 바싹 다가온 듯하다.
확률을 떠올린 것은 카드 놀이나 주사위 게임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 전날 모임에서 오간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미국산 수입 소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수천만분의 일로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가 날 확률보다 현저히 낮다고 말문을 열었다. 벼락을 맞고 살아날 확률은 60만분의 1, 비행기 추락사고 후 멀쩡히 걸어나올 확률은 2만7000분의 1,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질 확률은 889분의 1인데, 그렇다면 운명에 맡길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운명론으로 흐르다가 확률이란 당사자에게는 백퍼센트라는 이야기로 결론이 났다.
낡은 벽돌 건물과 허술한 관리도 문제였지만 싼샤댐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과연 안전한 곳일까.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 곳곳에도 고층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지진이 일어난다면 고층아파트 단지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다. 큰 지진 한번 없었던 우리가 과연 지진을 염두에 두고 내진설계를 제대로 한 건물을 지어올렸을까. 간단한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타일을 제거했을 때 콘크리트가 덜 차 텅텅 울리던 목욕탕 벽이 떠올랐다.
어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날 가능성을 수로 나타낸 것이 ‘확률’이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려면 로또 복권을 사야 한다. 조건이 성립된 상태에서 확률의 다크판은 돌아간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었다지만 언젠가는 내 이름이 적힌 판에 핀이 와 박힐 수 있다. 대형참사가 점점 느는 추세다. 전쟁뿐 아니라 이런 참사의 장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은 언젠가 이런 충격에도 무뎌질 수 있다. 그러다 자칫 또 다른 ‘타인의 고통’쯤으로 여겨버리고 말까 걱정이다. 확률 0을 향해 나아가는 길, 그것의 확률 또한 수천만분의 일처럼 요원할 것일까.
하성란 소설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