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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칼럼] 진실한 말, 필요한 말, 친절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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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8 23:02:21 수정 : 2024-09-08 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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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친지 모이는 민족 최대 명절
말도 눈도 많으니 충돌도 잦아
걱정·격려로 포장된 막말 대신
친절한 배려로 행복한 연휴되길

추석이 다가온다. 각지에 흩어져 사는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다. 세상을 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하고, 요즘은 그저 연휴라고 인식해서 여행을 가는 사람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이런 날, 찾아갈 가족도, 고향도 없어 더 외롭다고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적북적 모이는 가족들 틈바구니 자체가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말이 많고 눈이 많으니 부딪쳐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사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지가 친할 리 없다. 그러나 묘하다. 가족으로 얽히면 친한 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면 또 친해지기도 한다. 관계의 연금술이다. 그렇게 친해지기도 하지만, 말에 상처받고 행동에 상처받는 경우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 같다. 걱정해준답시고 판단하거나 모욕하고, 격려한답시고 비교하거나 깎아내리면서 좌불안석을 만드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마주 앉아 상대방을 설득하다 싸울 때면 가관이기도 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뻔한 가짜뉴스를 진짜인 양 힘을 줘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야 할 때면 맞장구를 쳐서도, 딴지를 걸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더 말이 많아지고 갈등이 많아지니.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종교적 성향은 바꾸기 어렵고, 정치적 성향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저 서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큰 갈등으로 번진다. 그럼에도 성향이 다른 가족을 툭툭 건드리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일까, 싸우자는 것일까.

문득문득 묻게 된다. 말이 소통수단이기는 한 걸까? 때로는 독백이고, 때로는 협박이고, 때로는 갈등의 주범이고, 때로는 소음인데. 물론 말로써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것은 말의 힘이라기보다 인격의 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이 되지 않는 말들이 있다.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공부는 잘하느냐고 묻는 말, 취업에 애쓰는 젊은이들에게 취업을 걱정하는 말,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에게 결혼의 말, 결혼한 부부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며 종용하는 말, 남의 종교적 성향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종교적 성향을 강요하는 말, 자신의 정치적 성향으로 타인의 정치적 성향을 비난하는 말, 말들!

사실 우리도 그런 시간들을 거쳐 오지 않았는가. 가족의 관심이 부담이 되고, 관심도 없는 가족의 관심이 상처가 됐던 나날들 말이다. 가족이라고 모인 모임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껴 도망가고 싶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거기, 내 낮아진 자존감이 원인인 적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불편한 관심이나 질문에 얼버무리거나 무시하며 지나갔던 것은 선을 넘는 가족들의 무례에 대응하는 최선의 예의이기도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들이 그렇게 생각 없는 질문으로 관심을 보였던 것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그들의 성향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고, 그랬을 것이다.

그냥 진학이나 취업을 했다고 하면 축하해주고, 결혼할 상대가 생겼다고 하면 그때 기쁘게 관심을 가져주고, 임신했다고 하면 축복해주면 된다.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굳이 캐묻는 것은 천박한 관심이 되기 쉽다. 선을 넘는 것이다.

‘법구경’에 나오는 수구섭의(守口攝意)라는 말이 있다. 입을 지키고 뜻을 거두라는 말이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말을 삼켜 입을 지키는 일이 수행의 기본이라는 뜻일 것이다. 말이 많아 탈을 만드는 일을 경계한 것은 어느 문화권이나 공통적이었던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탈무드’는 입을 열고자 할 때 통과해야 하는 3개의 황금문을 가르친다. 첫 번째 황금문은 하고자 하는 말이 진실의 말인가, 하는 것이다. 진실의 말이라고 다 덕이 되는 것이 아니니 통과해야 하는 두 번째 문이 있다. 그 진실한 말이 이 상황에서 필요한 말인가, 하는 것. 필요한 말이 아니면 진실의 말도 돼지에게 던진 진주가 된다. 그리고 나서도 통과해야 하는 셋째 문이 있다, 친절한 말인가, 하는 것이다. 필요한 말이고 진실한 말이어도 친절하지 않으면 상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이래저래 말이 힘들다. 그래서 최고는 침묵이라 하나 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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