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개혁 추진할 국정 구상 뭔가
이재명 ‘먹사니즘’ 진정성 있다면
두 사람 만나 달라진 정치 보여야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 집권 경험이 고스란히 사장되는 단절과 진영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전·현직 대통령 회동은 흔치 않다. 1960년대 ‘피그스만 침공’ 작전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공화당 출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 초청해 함께 오솔길을 걸어가는 사진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모두 보수당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살아온 내력이나 대통령이 된 과정, 국정 운영 스타일은 다르다.
두 사람 회동은 윤석열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시점에 이뤄졌다. 집권 반환점을 돌 즈음이면 대통령은 자신이 남길 레거시(legacy·유산)를 고민하게 된다. 취임 초 광우병 파동을 겪은 이 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국정 키워드로 ‘공정한 사회’를 내세웠다. 2010년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다. 이 전 대통령은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에서 “광우병 사태는 국민과 소통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됐고 정책 방향도 서민에 밀착된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수정하게 됐다”고 썼다. MB 정부의 공정사회 담론과 대·중소기업 상생을 내건 동반성장위원회 출범은 보수·진보 양쪽에서 논란이 일었지만 임기 내내 ‘대통령 의제’로 남았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대국민 국정 브리핑에 주목하는 건 집권 후반기 국정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지지율 20∼30%대에 묶여있는 윤 대통령은 한·미·일 외교 복원 등 대외적 성과를 빼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달 말 갤럽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평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건 ‘경제·민생·물가’(14%)와 ‘김건희 여사 문제’ ‘소통 미흡’(각 9%)이다. 문재인정부를 바닥부터 무너뜨린 건 ‘소득주도성장’의 역주행과 고삐 풀린 부동산 시장이었다. 정권 초기 청와대 회의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좌파척결’이었던 MB 정부가 집권 후반기 서민·중산층 정책에 역점을 둔 ‘삶의 정치’로 궤도 수정한 전략은 지금도 유효하다.
8·18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임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전 대표가 ‘먹사니즘’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민심을 의식해서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바로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곧 민생이자 ‘먹사니즘’의 핵심이다.” 대선 출사표를 방불케 한 당권 도전 선언문이었다. 뒤이어 민주당 내에선 정부안보다 기업 감세 폭을 늘린 반도체특별법 ‘K칩스법’이 발의됐고 ‘먹사니즘’을 뒷받침할 대규모 경제 공부 모임이 출범했다.
윤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비전, 연임 이재명의 8·18 전대 구상이 민생에 맞춰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겠다. 밑도 끝도 없는 탄핵, 특검법 정국으로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불능 국회’를 바라보면 더욱 그렇다. 야당의 법안 단독 처리→필리버스터→표결→대통령 거부권→부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깰 사람은 두 사람뿐이다. 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TV토론 후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 사퇴를 촉구하면서 “지금 당신이 자신에 던져야 할 질문은 당신의 적, 트럼프가 가장 원하는 게 뭘까다. 그리고 정반대로 행동하면 된다”고 썼다.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가 상대에 바라는 건 “지금 그대로” 아닐까. 지금껏 해온 대로 불통·불화하고 힘으로 부딪쳐야 상대에 대한 비호감, 적대감을 동력 삼아 진영을 뭉치게 하니 말이다. 뒤집으면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달라진 윤석열, 달라진 이재명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정권 초 약속한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끝까지 ‘대통령 의제’로 가져가려면, ‘사법리스크’에 묶인 이 전 대표가 수권 정당의 리더십을 보이려면 지금 방식으로는 어렵다. 일단 두 사람이 마주 앉아야 한다. 그래야 민생법안, 연금 개혁 같은 현안이 풀리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누가 더 달라지려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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