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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로 불 끄려다… 15초 만에 유독가스 뒤덮여 참변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

입력 : 2024-06-25 06:00:00 수정 : 2024-06-25 09: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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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왜 커졌나

출입구 앞 쌓아둔 배터리 박스서 ‘펑’
연기 피하려 벽쪽에 붙어 대피 시도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 구조 몰라

‘열폭주’ 리튬전지 화재, 물로 안 꺼져
가스·추가폭발 위험… 내부 진입 난항

24일 현재 22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건물엔 1층으로 탈출할 수 있는 계단 두 곳이 있었지만, 상당수 근로자들이 화재 당시 이곳을 통해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나왔다. 다수의 사망자들은 작업장인 ‘패키징룸’ 출입구 주변에서 발생한 불을 끄려고 시도했지만 15초만에 유독 가스가 번지며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화재가 일어난 아리셀 3동 건물 2층은 총 4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품 포장 작업을 하는 패키징룸, 연구소, 품질이사장방, 생산관리 등을 총괄하는 사무실이다. 화재 직후 첫번째 폭발이 일어난 곳은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패키징룸이다. 이곳 패키징룸에서 야외로 대피하기 위해선 문 밖으로 나가 양쪽 복도 끝에 있는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실종자 수색작업 2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24일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공장 화재현장에서 119 소방대원과 화재조사관들이 2층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화성=최상수 기자

하지만 패키징룸의 출입구 2개 중 계단과 가장 가까운 1개가 화재로 당시 이용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탈출한 회사 직원들에 따르면 인접한 계단과 가장 가까운 쪽에 있는 패키징룸 출입구 앞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 박스들이 적재된 상태였다. 바로 불이 시작된 곳이다.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수작업을 하는 테이블이 있었기 때문으로 이곳에 제품을 쌓아 둔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적재된 리튬 배터리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면, 불길과 연기 등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이 문을 이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존 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패키징룸에는 다른 1개의 출입문이 있었지만, 사망자들은 이 문으로 향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피해자 시신 대부분은 패키징룸 가장자리 벽면에서 발견됐다. 조선호 소방재난본부장은 브리핑에서 “(패키징룸에서) 처음 연기가 피어오른 뒤 큰 연기가 작업 공간 전체를 뒤덮는 데 15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작업자들이 당황해 문을 통해 1층으로 가지 못하고 벽쪽에 붙어 대피하다 짧은 시간에 유독성 연기를 흡입해 의식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키징룸의 건물 반대쪽 끝에 위치한 2층 연구실에도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붙어 있었지만, 이 계단이 무용지물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계단은 별도의 공간인 연구실 안에 위치했고, 평소 연구 장비들이 출입구를 가릴 정도로 쌓여 있어, 계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직원들이 있었다는 게 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수년간 이 회사에서 일했다는 직원 A씨는 “여기서 오래 일한 사람들 위주로만 존재를 알고 있던 계단”이라며 “피해자 대부분 얼마 일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일텐데 해당 계단이 있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망자 다수가 일용직으로 건물 구조를 몰랐을 수 있다.

 

현장 수색하는 구조대원들 24일 오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소재 리튬전지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공장 근로자 20여명이 사망·실종된 가운데 소방대원과 화재조사반 등이 현장수색을 하고 있다. 화성=연합뉴스
현장 수색하는 구조대원들 화재 사고 현장에서 119구조대원들이 사망자를 이송하는 모습. 최상수 기자
24일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일차전지 제조 공장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 소방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진화가 어려운 리튬 소재의 배터리가 화재 원인이었다는 점은 초기 대응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리튬은 물과 만나면 유해 가스를 발생시키면서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불이 난 공장에 스프링클러 또한 설치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로 추측된다.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화재 초기 내부에 있던 배터리 셀이 물로는 진화가 되지 않아 진화에 애로를 겪었다”고 초기 현장 상황을 밝혔다. 큰 불길은 화재가 발생한 지 약 5시간 뒤인 오후 3시10분쯤에야 잡혔다. 본격적인 인명 구조 작업도 그때서야 비로소 진행되기 시작했다. 리튬과 같은 알칼리 금속의 경우 진압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섭씨 1000도 이상 고온을 보여 위험하고, 추가 폭발의 가능성이 있어 진화가 매우 어렵다. 소방 당국도 이에 초기 진화 방식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분석된다. 소방 당국은 화재 초기 마른 모래 등을 활용해 진화하는 방식을 검토했으나, 배터리에 포함된 리튬이 소량인 것으로 확인돼 물을 활용한 일반적인 진압 방식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공장에 보관돼 있던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개는 이번 불로 모두 연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일차전지 제조업체 공장 화재 참사 현장을 찾아 상황 점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리튬 배터리는 겉면이 밀폐돼 있어 물을 뿌려도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며 “화재 초기라면 스프링클러 물로 냉각돼 진화 효과가 있었을 것이지만 불이 이미 커진 상태였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화재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참사와 관련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의 경우에는 건물의 구조, 화학물질의 적재 방법과 위치도 모두 고려해서 화재를 예방해야 하며, 화재 시 대피요령도 사전에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면서 “이번 화재의 경우 발화 물질이 비상구 앞쪽에 적재돼 있어 근로자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했다.


화성=이예림 기자, 이병훈·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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