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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점포, 명의 부여잡고… 재래시장 부활 꿈꾼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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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05 16:00:00 수정 : 2024-05-06 08: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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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민시장 지키는 상인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수도권지하철 4호선과 수인분당선의 환승역인 초지역에서 내려 아파트단지 사이를 헤쳐 10분 정도 걸어가면 보이는 작은 전통시장. 오후 1시에도 음식가게 15개 정도가 모인 식당가는 손님 한 명 보이지 않고 적막하다. 한 식당에서 얼갈이배추를 다듬는 주인의 바쁜 손이 이곳의 시간이 정지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안산의 유일한 전통시장인 안산시민시장이 조용히 사라져 간다.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 뒤로 고층 아파트들이 보인다.

안산시민시장의 역사는 1988년 서울올림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림픽 성화 봉송 루트였던 안산시가 소위 ‘대로변 미화’ 차원에서 번화가 호텔 앞에 산재해 있던 노점상 400여명을 야산을 밀고 조성한 4748.5㎡ 부지에 이주시키면서 출발했다.


시민시장 개장 후 손님이 좀처럼 늘지 않자 상인회는 전국 각지 보따리장수를 불러들여 오일장을 시작했다. 매월 5, 10, 15, 20, 25, 30일 보따리장수의 새로운 노점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시장 전체가 북적이고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때 습관대로 지금도 매월 5, 10일 등에 맞춰 시장을 찾는 시민이 있는 이유다.

 

2024년 12월 폐지를 앞두고 있는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의 모습. 상인이 점포를 비운 뒤 새로운 상인이 들어오지 않아 굳게 문이 닫혀 있다.
2024년 12월 폐지를 앞두고 있는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의 모습.

시민시장도 세월의 풍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30여년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을 옹기종기 둘러싸고 있던 연립주택은 고층아파트 벽으로 바뀌었다. 소음과 청결, 교통 문제로 오일장에 대한 아파트 주민의 민원이 쏟아지는 등 진통을 겪다가 2020년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오일장은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약 10㎡(3평) 남짓한 점포에서 지금도 장사를 이어가는 상인 대부분이 시장이 생겼던 시기에 들어왔다. 상인이 장사를 접으면 배우자가 승계해서 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점포가 들어설 수는 없는 체계다.

점심식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안산시민시장 식당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한 상인이 점포 앞에 앉아 있다.
점심식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안산시민시장 식당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점심식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안산시민시장 식당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점심식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안산시민시장 식당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한 상인이 점포 앞에서 얼갈이 배추를 다듬고 있다.

위형택 상인회장은 노점상 이주 당시 시장에 들어온 터줏대감이다. 위 회장은 “전통시장 조례상 상인이 장사를 못 하게 되어 나가면 공개 추첨을 통해 다른 시민 명의 이전을 하게 되어 있지만, 시가 전통시장 폐쇄 쪽으로 방향을 잡아 새로운 상인을 받지 않고 있다”며 “나이가 들어 (상인이) 장사를 더 이상 못하면 그 가게는 그대로 문을 닫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400여개 점포의 약 30%가 그렇게 문을 닫아 텅 비어 있다. 폐점 대신에 점포 유지를 선택했다가 질곡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전체 상점의 20%는 시장 부활을 꿈꾸며 일단 영업은 하지 않지만 다른 일로 번 돈으로 사용료를 내면서 점포 명의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절반 정도 남은 상인이 이 시장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장의 장래와 관련한 질문에서 ‘전통시장 현대화’라는 응답이 89.4%로 가장 높았다. 시는 주민 바람과는 달리 민간 사업자의 투자를 활용해 시민시장 부지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사업성 분석 결과 오피스텔 등을 포함한 복합시설이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024년 12월 폐지를 앞두고 있는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의 모습. 각종 약재들이 놓여 있지만 손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한 모녀가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을 지나가고 있다.
2024년 12월 폐지를 앞두고 있는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의 모습. 한 할머니가 시장에서 산 짐을 양손에 든 채 나서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 주차장 및 입구에 상인회가 놓은 전통시장 폐지 항의 피켓과 현수막이 있다.
2024년 12월 폐지를 앞두고 있는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민시장의 모습. 시장 설립 당시 연립주택 단지 자리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다른 전통시장처럼 시민시장도 고령 상인이 대다수다. 그들이 하나둘씩 가게를 접을 때마다 안산 유일의 전통시장 여명(餘命)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세월을 뛰어넘은 소통교류와 문화전승의 장(場)일 수 있는 전통시장.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화석이 아니라 현재를 숨 쉬는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


안산=사진·글 최상수 기자 kilr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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