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국내 부동산 불확실성 여전
집값 내리면 공시가 역전현상 발생 등
‘文정부 로드맵’ 현실적 부작용도 감안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는 가격 올라
마래푸 84㎡ 보유자 253만→284만원
정부는 21일 내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을 결정하며 금리 인상, 물가 상승,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글로벌 경기상황과 국내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리면, 보유세를 비롯한 각종 세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의 의결 내용을 바탕으로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는 집값 급등 상황 등을 감안해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고 2024년부터는 수정한 현실화 계획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향후 수정안 적용 대신 현실화 계획 자체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가 2020년 수립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사실상 폐기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정부는 로드맵에 맞춰 공시가격 현실화율 인상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기대 수준과 벗어나는 공시가격 상승이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현실화 계획을 먼저 세워놓고 이에 맞춰 공시가격을 끌어올리다 보니, 집값이 오를 때는 세 부담이 예상보다 더 늘어나고 집값이 하락할 때는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2019년 5조1000억원 수준이었던 주택분 재산세는 지난해 6조7000억원으로 늘었다. 종합부동산세도 같은 기간 1조원에서 4조1000억원으로 급등했다. 정부가 이번에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 전면 재검토를 못 박은 것은 로드맵 일부 수정만으로는 국민 세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고금리 장기화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다시 조정국면에 접어든 시점이라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민심을 우선 고려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기존 현실화 계획의 필요성·타당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연구용역을 실시한 뒤 이를 토대로 내년 하반기 중에 근본적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현실화 계획 및 공시가격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도 실시하기로 했다. 국민 인식조사 등을 통해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을 새로 설정할 경우 정부가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한 뒤 국회 동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 내년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새 로드맵 도입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일단 내년의 국민 세 부담은 올해와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이 일정 부분 상승하면서 올해보다 늘어난 보유세를 내게 될 전망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의 시뮬레이션 결과,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84㎡)를 소유한 1주택자는 내년에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쳐 283만7000원을 납부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납부액(252만6000원)보다 11.6% 늘어난 수치로, 지난해 내지 않던 종합부동산세(7만9000원)를 내게 된 영향이다. 올해 1526만원을 냈던 마포래미안푸르지오(84㎡)와 강남구 대치동 은마(84㎡) 소유 2주택자의 내년 보유세는 2020만원으로 32.3%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지방 주택은 올해 집값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았던 만큼 보유세 부담도 올해와 비슷하거나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 결정으로 세 부담 우려가 줄어든 것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내년 이후의 방향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정책적 의미와 효과는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큰 폭의 세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없어졌지만, 이번 발표는 앞으로 공시가격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유보한 것”이라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빨리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현실화율이 똑같기 때문에 개별 주택의 공시가격이 오르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세 부담이 달라질 것”이라며 “수도권과 지방 간 세 부담 편차가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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