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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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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1-08 23:24:54 수정 : 2023-11-09 09: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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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하는 통화내용에 점점 귀 기울이게 되는 때가 있다. “아니, 잠깐만요. 아버님, 제 얘기도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이쯤 되면 클라이맥스다. 처음에 안부를 묻고 요청사항을 말하고 상대방 얘기를 들어보고 쌍방이 협의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나 했는데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인정과 설득을 무한 반복해도 소용이 없는 대화 상대가 있다. 오늘 대화의 주인공은 다문화가정 아버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제 겨우 중학생이 된, 이제 겨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자녀들을 다 큰 성인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제대로 먹여야 큰다거나 위생 상태가 좋아야 병에 안 걸린다거나 애들도 용돈이 좀 필요하다는 설득이 튕겨 나온다. 가정에서는 아이들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학교에서는 주목을 받는다. 중재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는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이들의 공통점이 또 있다. 나이가 모두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늦둥이를 둔 아빠들이다. 가끔씩 안부차 만나는 손자, 손녀였음 좋았을 아이들이 매일 먹이고 입히고 챙겨야 하는 자식이니 그 나이에 그 고충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자식인데 어쩌란 말인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감각을 탓해봤고, 이쯤 되면 아동학대인데 인식이 없다며 무지를 탓해봤다. 아버지 자신이 보살핌을 못 받고 자라서 방법을 모른다고 성장환경도 탓해봤다. 개인 차원의 원인이 차고 넘친다. 그렇다고 개인의 문제일까?

늦게 얻은 자식이니 어느 한구석에 ‘딸바보’나 ‘아들바보’ 아버지도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애정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남성 한부모로 혼자 자녀를 키우고 있으나 그들이 맞닥뜨린 과업은 양육이 아니다. 자신의 허리통증이고 고관절통증이고 기능이 사라져 가는 청력이다. 모아둔 것 없는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매일 찾아오는 우울과의 전투가 과업이다.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다 알게 된 사실이다.

아버지의 과거 직업은 대부분 건설노동자다. 가끔 생산직 노동자도 있다. 이들의 직업력이 말해주는 게 있다. 왜 이리 늦둥이를 두게 되었는지, 왜 아이들을 혼자 키우게 됐는지 그런데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지를 알려준다. 건설노동자나 생산직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 이런 경로를 밟지는 않겠지만 이 아버지들에게는 그렇다.

물론 다문화가정 아버지들만 그런 건 아니다. 대부분 육체노동으로 나이 드는 남성이 일찌감치 무직이 된 사연엔 모두 사고와 질병이 있다. 그들이 젊은 노동력으로 받았던 임금 안에 그들의 노후와 자녀의 몫까지 들어있었나 보다.

생산인구, 노동인구 우리가 한 명의 인구로 불릴 때가 있다. 숫자로 치환될 때 1만큼 증감의 역할을 할 뿐이지만 한 명의 아버지로, 어머니로 불릴 때는 한 명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역할에 공백이 생길 때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에 힘입어 지역사회가 나선다. 다행이다. 그런데,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아이가 크는 데 필요한 섬세한 보살핌을. 얼마나 메꿀 수 있을까? 양육의 질이 벌려 놓을 사회적 격차를. 한 사람의 노동자가 노동인구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온 사회가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게 먼저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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