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기관 전반 ‘코드인사’가 원인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한민국의 독특한 헌법기관이다.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제2공화국 헌법에 최초로 도입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워낙에 3·15부정선거의 재발 방지에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기 때문에 선관위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주요 선진국 중에서 선관위를 헌법기관으로 두고 있는 예는 찾기 어렵다. 물론 3·15부정선거와 같은 경험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선거 관리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선거 관리란 선거철에 일이 집중되는 반면에 평소에는 일이 많지 않다. 그로 인해 선거 관리만을 전담하는 상설 기구를 두는 것이, 그것도 헌법기관으로 두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비효율성에도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선관위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지만, 최근 그런 믿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선관위뿐 아니라 대부분의 헌법기관이 제 기능을 못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역할이 커지고 위상이 강화되었던 선관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각종 의혹으로 신뢰가 하락하더니, 이번에는 자녀 특혜 채용으로 사무총장과 차장이 동반 사퇴하는 상황까지 맞게 되었다.
자녀 특혜 채용 문제가 선관위에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중립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선관위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에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크다. 더욱이 이런 문제가 노출되기 전에 내부적 자정 노력도 외부적 통제도 없었다는 점이 선관위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이런 선관위를 계속 국민 세금으로 유지해야 하느냐는 식의 선관위 존폐론까지 나오고 있다.
선관위 문제에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부터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이는 자녀 특혜 채용의 문제뿐 아니라, ‘내로남불’ 현수막 금지 등 선관위의 편향적인 선거 관리에 대한 광범위한 의혹과도 맞물려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 몇 년 사이에 선관위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헌법기관 전반의 광범위한 코드 인사가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9인의 위원 중에 7인을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대법원장이 결정한다는 것은 코드 인사가 사법부까지 지배하는 상황에서 선관위 위원 구성이 얼마나 편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욱이 선거 관리를 직접 담당하는 선관위 공무원들의 특성에도 일반 행정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선관위 재직 중에만 정당 가입이 금지되는 정도의 제한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로 인해 특정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던 인사가 선관위 상임위원이 됨으로써 논란이 뜨거웠고, 그 밖에도 다수의 선관위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 복원 및 강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서만 선관위의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당장 개헌은 어렵다. 하지만 관련 법령의 개정을 통해 선관위 위원을 포함한 선관위 공무원들은 임용 전에 최소한 3년은 당적을 보유하지 않았고, 선거 캠프 등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선관위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외부적 통제도 실질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헌법기관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요구하는 것이 권력분립 원리의 요청이며, 대통령도 국회나 사법부의 통제를 받는데 선관위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대법관이 위원장으로 추대되는 관행은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법부 코드 인사로 인해 파생된 문제로 보는 것이 옳다. 정말로 중립적이고 공정한 대법관이라면 아무래도 정치 성향이 더 강할 수밖에 없는 국회 추천 위원 또는 대통령 추천 위원보다는 선관위 위원장으로 적임자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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